【에코저널=양평】밀이 주식이거나, 밀을 이용한 식문화가 발달한 유럽과 북미 등지에서는 수 세기 동안 밀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꾸려졌다.
밀의 독특한 특성과 빵 굽는 기술은 지역마다 달랐다. 농부들은 밭에서 생밀 알갱이를 맛보고 단백질 함량을 평가했고, 언제 수확할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지역색을 가졌던 빵이 밀 농사의 기계화와 대량화, 제분 방식의 변화와 운송 수단의 발달 등으로 인해 ‘균일’한 빵으로 변해갔다.
우리나라는 쌀이 주식이고 빵을 간식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컸다. 그렇다 보니 빵 본연의 맛보다 팥앙금이나 설탕 등 각종 부재료로 맛을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빵을 주식처럼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1인당 쌀 소비량은 56.4kg, 밀 소비량은 38.9kg이다. 쌀 소비량은 해마다 조금씩 줄고 있고, 밀 소비량은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가운데 네니아가 ‘밥이 되는 빵’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네니아 브레드’는 네니아가 만드는 ‘빵’의 브랜드명이며, 네니아가 제조 시설을 갖추고 직접 상품을 만들고 유통한다.
네니아 브레드는 네니아가 직접 수매한 유기농 우리밀로 빵을 만든다. 친환경 우리밀은 관행밀보다 비싸고, 우리밀은 수입밀보다 비싼데도 네니아는 왜 굳이 ‘유기농 우리밀’을 원재료로 빵을 만들까. 이미 제과제빵 시장이 포화해 보이는데 제빵 시장에 뛰어드는 이유는 뭘까.
네니아가 양평으로 사옥을 이전한 뒤에, 네니아 문영진 대표는 네니아가 직접 빵을 만드는 직영 ‘네니아 브레드’를 만들고 싶었다. 예전부터 마음속에 두고 있던 사업이다.
문 대표는 네니아 방향과 맞는 제빵사를 찾아 나섰다. 경기도 광주와 여주, 이천 등 양평 인근의 빵집을 알아보다가 현재 네니아 브레드에서 일하는 오진무 제빵소 소장을 만났다. 오진무 소장은 경기도 광주에서 제과점 2~3개 운영하면서 천연발효종 빵을 만들고 있었다. ‘밥이 되는 빵’을 만들고 싶던 두 사람은 눈이 맞았다.
네니아 문영진 대표는 “네니아 브레드는 향후 2년 뒤쯤 한국 최고의 유기농 우리밀 제과 제빵 전문 회사로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계획을 세운 문영진 대표와 오진무 소장의 이야기를 시리즈로 전한다. 먼저 문영진 대표와의 인터뷰 내용을 문 대표 직접 화법으로 정리했다.
네니아 CEO에게 듣는다
왜 우리밀 빵을 생산하려 하는가
문영진 ㈜네니아 대표.
우리밀에 대한 단상
황해도 연백 평야 광활한 지역에 황금빛 익어가는 밀이 넘실거리고 있다. 이는 분단 이전에 실재했던 사실이고 일부는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1983년 정부가 우리밀 수매를 중단하기 전의 밀 생산량은 10여만 톤 내외였는데, 2024년 우리밀 생산량은 3만5천톤 남짓하다. 우리밀 재배면적은 1983년에 비해 90%나 감소했다.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밀 가운데 사료가 아닌 식품에 소비되는 밀의 양은 약 250만톤, 이 가운데 ‘우리밀’ 사용량은 소비량 기준으로 1% 남짓, 생산량은 1.4% 내외다.
최근의 정치적 암울함에도 불구하고 ‘K Culture’(한류 문화)와 ‘K Food’(한국 음식) 열풍은 국경을 아우르며 세계를 석권했다. 2024년 K푸드 수출이 70억 2천만 달러, 그중 라면 수출 금액이 13억 6천만 달러였다. 이 가운데 우리 농산물로 가공한 진정한 K푸드는 얼마나 됐을까? 라면은 우리밀 사용량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1970년대의 우리나라 인구가 3천만명 대, 농가 인구가 1442만명이었다. 통계청 자료는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가 5132만명, 농가 인구는 208만 9천명이라고 발표했다. 50년 동안 전체 인구는 2천만명 넘게 늘었고, 농가 인구는 1200만명 넘게 줄어든 것이다. 게다가 우리밀 농업을 지탱할 정책이 부재했다.
기원전 100여 년 전부터 삼국시대를 넘어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온 우리밀의 역사가 단 40여 년 만에 붕괴됐다. OECD 국가 중 그 어느 나라에서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토록 잔인할 정도로 최소한의 기반이 철저히 붕괴한 사례가 있는가? 농민을 위한 정부, 식량 주권을 스스로 지키려 했던 정부는 해방 이후에 단 한 번이라도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식량은 유행을 타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그 어떤 것도 아니다. 식량 주권은 자국의 국민을 위한 최소한의 기본권이고 국민이 주인인 정부의 최소한의 자주권이다.
네니아 브레드 설립 배경…눈 내리는 벌판을 걸을 때
눈 내리는 벌판을 걸을 때라도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오늘 걸어간 이 발자국은 뒤에 오는 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서산대사의 한시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를 우리말로 풀어서 써 보았다.
유독 농민과 농업에 대해 부재한 정부 정책에 맞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대안이 되고,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담론의 장을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한국 사회에서 우리밀 분야에서만큼이라도 사업의 전형을 입증하고 뒤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이정표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가 제시한 이정표를 따르고 그것을 기어이 넘어서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렇다’라고 한다면 우리가 입증된 실체를 통해 농업에 기여하고, 무감한 정부도 식량 주권에 관한 효율적 정책에 관심과 태도를 밝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이 네니아 브레드의 설립 배경이다. 우리가 대안을 만들고, 우리가 이정표가 되고,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 동참하여 정부 정책에도 길을 낼 수 있게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다고 궁극의 목표가 ‘정부 정책’은 아니고, ‘우리가 바른 이정표를 만드는 것’이다.
네니아 브레드는 무엇을 꿈꾸는가
네니아 브레드가 꿈꾸는 것은 지금까지 네니아가 해왔던 일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최상의 원료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고, ▲유해 첨가물이 배제된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고, ▲우리밀을 생산·제분하고 빵과 과자를 만들고 소비하는, 농민-노동자-소비자의 공정하고 수평적인 가치사슬연대를 만들고, ▲사업의 치열함을 통해 쇠락한 한국농업의 대안과 이정표를 세우는 것 ▲영혼이 담긴 빵들 만드는 것이다.
네니아 브레드는 유기농 우리밀을 사용해 ‘밥이 되는 빵’을 만들고 있다. 갓 지은 밥이 가장 맛있듯이 갓 구운 빵이 가장 맛있는 법, 이러한 빵을 네니아는 ‘파베이크’ 제품을 통해 구현하고 있다.
네니아 브레드의 원칙과 지향
① 최상의 원료로 최고의 제품을!
② 유해 첨가물이 배제된 안전한 먹을거리를!
③ (우리밀을 생산/제분하고, 빵과 과자를 만들고, 소비하는) 농민-노동자-시민 소비자의 공정하고 수평적인 가치사슬연대!
④ 사업의 치열함을 통해 쇠락한 한국농업의 대안과 이정표!
⑤ 영혼이 담긴 빵!
농업 정책, 농민과 시민의 연대
농민운동과 시민들의 만남, 그 이정표 중 하나가 2024년 12월 21일부터 22일까지의 ‘남태령 대첩’일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전봉준 투쟁단’이 트랙터 30여 대와 화물차 50여 대를 앞세워 전국에서 먼저 모인 곳은 12월 19일 세종시에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앞이었다. 이들의 주요 요구는 농업 4법(양곡관리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지법, 농업경영체법) 개정안 통과, 정부의 농업 정책 전환 등이었다. 이들은 세종시 농식품부 앞에서 집회하고 서울로 이동했다. 12월 22일 오후 2시에 서울 도심에서 농업 정책 개선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었다.
이들은 12월 21일 정오쯤 서울로 들어가는 관문인 남태령 고개에 도착했다. 그러나 경찰은 서울 도심으로 들어가려는 농민들의 진로를 차단했다. 12월 추위가 살을 에고 저녁이 되자 배가 고팠으나 주위에는 상점이 없었다. 이 소식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다. 밤 아홉 시가 되자 광화문에서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하나둘씩 남태령으로 왔다. 몇 명이 보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3만 명 넘는 시민들이 ‘느릿느릿 무장무장’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강진군 농민회 소속 한 농민은 “이것은 한 개의 나락이 160개의 알곡이 되는 일보다 놀라웠다”라고 그 당시를 묘사했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농업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민들은 고립된 농민들을 환대하고 연대했다. 농민의 길은 기어코 같이 가야 하는 길이다. 때로는 우직하게, 때로는 기민하고 영리하게.
네니아 브레드는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처럼, 바른길을 걸어 농민과 시민들을 만날 것이다. 지금은 작은 작업장이지만 향후 2년 후 한국 최고의 유기농 우리밀 제과 제빵 전문 회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이정표가 되어 한국의 밀 자급률을 높이고, 농업 정책을 바로 세우고, 식품 회사들이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드는 기틀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