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따리】백족(白族, 바이족) 자치주인 대리(大理, 따리)에서의 3박4일 일정을 끝내고, 티베트족 자치주인 ‘샹그릴라(香格里拉)’로 이동했다.
관광객들은 ‘따리(大理)’ 글자를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따리 일정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다. 따리에서 만난 바이족, 한족 등 모든 중국인들이 한국인이라고 밝히면 매우 친절하게 대해줬다. 어두운 밤에 빛을 밝혀준 운전기사, 친절한 식당의 종업원들, 바이족 마을의 어르신, 뭐든지 자세히 알려주려는 의욕 가득했던 숙소 주인, 환한 미소로 반겨준 그들을 쉽게 잊지는 못할 것 같다.
쿤밍역 역사 전광판에 따리로 향하는 고속열차 시간표(맨 아래)가 표출되고 있다.복건성(福建省, 푸젠성) 성도(省都) 복주(福州, 푸저우)에서 하루 묵은 뒤 운남성(雲南省, 윈난성) 성도 곤명(昆明, 쿤밍)에서 내린 후 다시 고속열차로 이동한 곳이 ‘따리’다.
쿤밍에서 출발해 따리역에 도착한 시간은 밤 12시, 숙소 주인이 3박을 예약한 VIP 손님(?)이라 특별히 기차역까지 차를 보내줬다.
숙소에서 보내준 차량에 올라 30분 가량을 달렸다. 깜깜한 밤에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에 의지해 달리던 운전기사가 주택가 좁은 오르막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이 점점 좁아지더니 나중엔 차량이 통과할 수 없을 정도가 됐다.
낮에 촬영한 숙소 주변 골목.운전기사는 오르막 방향을 가리키며 “30m 정도만 걸어가면 목적지”라고 말했다. 그는 끝까지 태워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었는지, 가로등 없는 골목길을 돌아 숙소로 향할 때까지 차량 헤드라이트를 켜 놓은 채 자리를 지켜줬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찾기 좀 어려운 숙소 앞 우회도로가 존재했다.
도착 첫날, 숙소에 도착해 샤워하고 나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넘었다. 중국 내에서 이동하다 보면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숙소에 비치된 산소캔.따리시는 해발고도 2086m의 고지에 위치하는데, 산 아래에 있는 숙소의 고도는 2373m다. 숙소 체크인 카운터 옆에는 산소캔도 비치돼 있다.
따리 숙소 ‘라이취얼’ 간판.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숙소의 이름은 래취인(来趣儿, 라이취얼). 한자를 보면, ‘사람들이 많이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인 것 같다.
따리 숙소 ‘라이취얼’ 외관.‘라이취얼’은 3층 주택을 개조해 여러 개의 방을 만들어 에어비앤비로 활용했다. 숙소는 3층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어 체크인과 체크아웃 때 약간의 수고를 해야 했다.
숙소 옥상에서 정면으로 본 모습. 멀리 ‘얼하이호’가 보인다.
숙소 뒤편의 모습.숙소의 장점은 옥상에서 정면으로 멀리 ‘이해’(洱海, 얼하이호)가 보였다. 뒤편으로는 구름에 쌓인 모습의 산이 조망됐다. 숙소 1층 주방에서 음식 조리도 가능했지만, 탐방 후 복귀가 늦어 시간이 없었다. 물가가 저렴한 것도 큰 이유다.
바이족 전통복장을 판매하는 상점.3박4일 동안 가장 많이 찾은 곳은 숙소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위치한 ‘따리고성(大理古城)’이다. 재래시장도 비슷한 거리여서 이동이 편했다.
바이족 마을과 얼하이호 등은 차량 호출 모바일 앱 ‘디디추싱(滴滴出行)’을 이용해 이동했고, 운임도 저렴했다.
喜洲(희주) 글자가 붙은 바이족 옛 건물.
바이족 문화마을 ‘시저우구전’의 골목.숙소에서 차량으로 30분 정도 달려 도착한 바이족 문화마을 ‘시저우구전(喜洲古镇)’의 보리밭은 사진촬영 명소다. 중국 내국인들이 대부분이다. 서양인도 매우 드물고, 한국인은 아예 만나지 못했다.
희주 바이족 문화마을의 보리밭애는 관광용 기차가 다닌다.
희주 바이족 문화마을의 보리밭.
희주 바이족 문화마을의 라일락 가로수 거리.
희주(喜洲) 바이족 마을도 상업화가 진행돼 상가들이 따리고성 일대에서 판매하는 물건들과 거의 비슷해 큰 흥미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보리밭과 라일락 가로수의 정취가 큰 위안이 됐다.
저우청 표지석.바이족 전통 염색인 홀치기염색 ‘찰염(扎染, 자란)’의 발상지라는 주성(周城, 저우청)은 그나마 상업화가 덜 진행된 순수함이 남아있었다.

‘저우청’ 마을 공중화장실.마을 공중화장실을 갔다가 큰일을 보기 민망한 구조가 남아있어 당황했다. 따리 도시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진짜 개방형화장실’로 이해했다.
염색한 천들이 벽에 걸려 있다.바이족 전통 민가로 이뤄진 마을에서는 하얀 천에 청백색으로 염색한 옷과 손수건, 식탁보 등을 팔았다. 마을 곳곳에는 염색한 천들이 바람에 날렸다.
저우청에서 만난 할머니들.걷다가 지쳐 길가에 앉아 쉬면서 바이족 할머니들과 번역기로 소통하려 했지만, 결국 서로 계속 웃기만 하고, 실패했다. 마땅히 드릴 게 없어 가방에 있던 알사탕을 드렸더니, 환하게 웃으시면서 받아주셨다. 그렇게 서로 말없이 10여분 앉아 있다가 떠나려고 일어서니 세 분이 손을 흔들어주셨다.
따리 숙소 ‘라이취얼’의 주인 ‘추수타오’.
따리 숙소의 주인은 바이족인 아닌 한족이다. 하북성(河北省, 허베이성) 출신인 추수타오(曲苏涛, 1983년생)는 숙소에 머무르는 동안 항상 친절하게 대해줬다. 추수타오는 두 아들을 뒀는데, 일찍 결혼해서 큰아들은 22살이라고 한다.
따리를 떠난 직후 위챗 친구가 된 추수타오는 번역기를 이용한 한국어 메시지를 보내왔다. 원문을 그대로 전하면 “윈난대리는 창산을 등지고, 얼굴은 이해로 향하고, 풍화설월이라 불리며, 하관풍, 상관화, 창산설, 이해월, 친절하고 손님을 좋아하는 대리인은 한국인민이 대리에 놀러 오는 것을 환영한다”고 적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