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과나눔 공간풀숲, 이재용 개인전 ‘오랜 정원에서’

메뉴 검색
숲과나눔 공간풀숲, 이재용 개인전 ‘오랜 정원에서’ 작가의 오랜 정원에서 생장한 식물들의 초상   남귀순 기자 2026-06-09 09:32:31

【에코저널=서울】재단법인 숲과나눔은 이재용 개인전 ‘오랜 정원에서’를 6월 11일부터 6월 27일까지 공간풀숲에서 개최한다. 숲과나눔의 ‘에코포토아카이브’에 탑재한 작가의 작품을 조명하는 기획전으로, 숲과 바다, 식물 등 자연 풍경을 주제로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온 이재용 작가의 사진과 영상 설치작품 24점을 선보인다.

 

‘오랜 정원에서’ 작품의 배경은 안성 죽산에 있는 이재용 작가의 정원으로, 이번 전시회에 등장하는 모든 식물의 터전이다. 작가는 본인이 직접 돌보는 정원에서 식물들을 채집해 표본으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촬영하고 레이어드하는 과정을 통해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본래 지닌 ‘기록’의 속성과, 표본이라는 형식이 품고 있는 ‘보존’의 의지가 만나 전혀 새로운 시간의 층위를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회에 카본 프린트로 특별히 제작한 사진이 출품된다. 이재용 작가는 식물의 순간들을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해 선명하고 아름다운 식물 초상을 만들었다. 

 

순백의 배경 위에 홀로 서 있는 식물들은 마치 인물 사진에서 배경을 제거하고 얼굴만을 클로즈업한 초상사진처럼 보인다. 포커스 스태킹 기법으로 인해 판화처럼 선명하고, 꽃잎의 미세한 주름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피어있으나 고요하고, 살아 있으나, 정물처럼 정지해 있는 식물 초상사진이다. 사진 속에 목련, 다바나고사리, 크리스마스로즈(헬레브로스), 오동나무씨방, 산당화의 모습이 생생하다.

 

‘포커스 스태킹(Focus Stacking)’은 동일한 피사체를 초점 거리를 달리하며 수십 장에서 수백 장까지 반복 촬영한 뒤, 각 이미지에서 가장 선명한 부분만을 추출해 하나의 화면으로 합성하는 기법이다. 그 결과, 인간의 육안으로는 결코 볼 수 없는 장면이 탄생했다. 꽃잎의 가장 바깥 끝에서 꽃술의 가장 깊은 안쪽까지, 화면의 모든 지점이 동시에 선명하다. 이재용 작가는 이 기법을 통해 식물의 ‘가장 완전한 순간’을 구현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찰나마다 달리 보이는 꽃의 모든 깊이와 층위를 하나의 정지된 화면 안에 압축해 담는다.

 

이재용 작가의 작품들이 지닌 특유의 회색조와 부드러운 질감은 카본 프린트(Carbon Print)라는 출력 방식에서 비롯된다. 카본 프린트는 19세기부터 사용된 고전적 인화 기법으로, 화학 약품이 아닌 탄소 안료를 사용해 이미지를 정착시킨다. 이로 인해 완성된 사진은 잉크젯 출력물과는 전혀 다른 물성을 지닌다. 표면에는 미세한 요철이 생기고, 색조는 중성적이고 깊으며, 빛에 따라 이미지가 달리 보이는 회화적 특성을 갖는다. 작품의 가장자리에 자연스럽게 남겨진 불규칙한 경계선 역시 이 수작업적 인화 과정의 흔적이다. 이처럼 포커스 스태킹이라는 첨단 디지털 기술과, 카본 프린트라는 고전적 아날로그 인화 방식의 결합은 이 작품들이 지닌 시간적 초월성의 근원이다. 현재의 기술로 포착된 가장 선명한 식물의 순간이, 한 세기 이전의 방식으로 인화돼 전혀 다른 시간대의 아우라를 입는다.

 

‘오랜 정원에서’ 전시는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식물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하나의 정원 안에서도 식물들은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는다. 뿌리는 땅속에서 균류와 연결되고, 잎은 공기를 나누며, 씨앗은 바람과 벌레와 새의 몸을 빌려 멀리 퍼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촘촘한 연결망이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그 생태계는 다시 더 넓은 세계와 이어진다. 

 

작가의 작품 안에서 식물들이 겹치고 투명하게 비치며 하나의 세계를 이루듯, 지구상의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은 그렇게 서로의 안에 깃들어 있다.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저마다 다른 식물의 초상이지만, 함께 놓일 때 하나의 거대한 생명의 그물이 된다. 

 

‘오랜 정원에서’ 길어 올린 이 이미지들이, 보는 이의 내면에 또 하나의 정원을 가꾸고, 우리가 이미 서로의 일부였음을 조용히 일깨우는 계기가 된다.

 

전시 연계 행사로 ‘작가와의 만남’이 6월 19일 오후 4시에 공간풀숲에서 열린다. 작가의 생생한 작품 설명과 함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오피니언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