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대정전 1주년, 전력망 안정화 정책 집중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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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정전 1주년, 전력망 안정화 정책 집중 논의 스페인·포르투갈, 전원 탈락 시작 19초 만에 ‘암흑’   남귀순 기자 2026-06-25 09:43:48

【에코저널=서울】지난해 4월, 스페인·포르투갈 전역이 불과 19초 만에 암흑에 빠졌다. 유럽 최근 20년 내 최대 규모의 동시 대정전이었다. 그 1주년을 맞아 교훈을 국내 전력망 안정화 정책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집중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혜 의원(경기 의정부갑)실과 (사)에너지전환포럼은 지난 24일 국회의원회관 제11간담회의실에서 ‘스페인 대정전 1주년,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토론회를 공동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가 반드시 함께 가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19초 만에 무너진 전력망…두 차례 진동이 부른 연쇄 붕괴

첫 번째 발제를 맡은 송태용 전력거래소 팀장은 스페인 정전의 전 과정을 분석했다.

 

사고 당일 재생에너지가 전체 발전량의 약 71%(태양광 59%, 풍력 12%)를 담당하던 중 오전 10시 30분경 원인 불명의 전압 이상이 시작됐다. 이후 12시 3분부터 22분 사이 두 차례 계통 진동이 발생했다. 1차 진동(0.63Hz)은 인버터 제어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2차 진동(0.2Hz)은 스페인과 프랑스 계통 간 광역 진동(지역모드)이었다.

 

스페인 계통운영자는 이 진동을 줄이기 위해 송전선 투입, HVDC 조류 변화 등 일련의 조치를 취했지만, 전압이 상승하는 불안정 현상을 막지는 못했다.

 

12시 32분부터 태양광·풍력 발전기가 연쇄적으로 멈추기 시작했고, 주파수가 급락했다. 주파수 방어를 위한 10.5GW 규모의 대규모 부하 차단(UFR) 역시 무효전력을 흡수하던 양수 펌프 등을 함께 끊어 전압을 추가로 끌어올리는 악순환을 불렀다. 전원 탈락이 시작된 지 불과 19초 만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전역이 암흑에 빠졌고, 정전은 15시간 27분간 지속됐다.

 

송 팀장은 “계통 붕괴 직전 사고 진행 속도가 너무 빨라 운영자가 수동으로 대응할 시간이 전혀 없었다”며 “사전에 자동화된 안전장치를 촘촘히 갖추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존 전력망 한계 노출…새로운 계통 제어 기술로 전환해야

두 번째 발제를 맡은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고문은 스페인 정전을 “기존 화력발전 중심의 전력망 운영 방식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진단했다.

 

전영환 고문은 스페인 정전의 원인을 두 가지로 짚었다. 첫째는 지역적으로 낮은 SCR(계통강건성지수)로 인해 정전 이전부터 진동이 발생했음에도 SCR을 높여서 계통을 튼튼하게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는 것, 둘째는 재생에너지 인버터의 전압제어 기능을 확보하지 않았다는 것.

 

전 고문은 “스페인은 재생에너지 중앙제어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지만, SCR 확보와 전압제어 기능은 중앙에서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적으로 설비를 갖춰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라며 “우리도 재생에너지를 중앙에서 감시·해석·제어하는 설비를 갖추되, 지역적으로 SCR을 높여 계통을 강건하게 유지하고 전압제어 기능을 충분히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드포밍(GFM) 기술로 보완하는 대책이 마련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SCR을 높이지 못하고 그리드포밍 인버터 간 간섭 현상을 일으키는 문제가 있다는 점도 함께 지적했다.

 

전문가들, “계통 안정화 제도 정비와 정책 리더십 시급”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홍종호 교수가 좌장을 맡은 지정토론에서는 스페인 사태를 반면교사 삼아 국내 전력망 운영 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국전력 곽은섭 계통기획처장은 스페인 사고의 결정적 역설을 지목했다. 그는 “진동 억제를 위해 취한 조치가 전압 폭등을 유발하고, 주파수 방어를 위한 대규모 강제 단전이 무효전력 흡수원까지 차단해 전압 상승을 가속시키는 악순환이 19초 만의 붕괴를 불렀다”며 “대응 조치가 오히려 사고를 악화시킨 메커니즘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곽 처장은 이를 막기 위한 국내 핵심 과제로 ▲진동 기준 수립-이상 진동 감지 후 30초 이내 자동 경보 발령·경계 단계 시 송전선로 무분별 투입 금지 절차 명문화 ▲UFR 체계 고도화-재생에너지 대규모 동시 탈락 시나리오 반영 차단량 재산정, 무효전력 흡수 부하(양수 펌프 등) 차단 대상 제외 ▲재생에너지 계통 기여 의무화-신규 재생에너지 연계 시 전압제어 운전 기능 명시 의무화 및 기설치 설비 전수 점검 ▲전압 안정성 제도화-Sh.R 자동제어 시스템 도입, 동기조상기·STATCOM 등 계통안정화 자원 대폭 확대 ▲광역 감시 체계 확충-345kV 이상 주요 변전소 전 개소에 실시간 광역 감시 장치(PMU) 의무 설치 필요성 검토·진동 자동 감쇠율 계산 시스템 조기 활성화 등다섯 가지를 제안했다.

 

산업계 토론자로 나선 강지성 한국그리드포밍 대표는 차세대 기술의 제도화를 촉구했다. 강 대표는 “재생에너지 설비가 전력망 불안정을 견디지 못하고 동반 탈락하는 현상을 막으려면 스스로 전력망을 지탱하는 차세대 인버터 기술의 도입이 절대적”이라며 “실증을 넘어 국내 실정에 맞는 기술 기준을 서둘러 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승호 전기위원회 위원은 “재생에너지를 계통 운영에 완전히 통합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송 위원은 “재생에너지를 관측 가능하고 제어 가능한 상태로 운영해야 하며, 사고 발생 시 근본 원인을 찾아 분석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며 “이미 국내에서도 대규모 발전기 탈락, 인버터 진동, 경부하 전압 변동 등 전조증상이 나타나고 있는 만큼 선제적 대응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연세대학교 허견 교수는 스페인이 PMU·소신호 안정도 분석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선진 운영기술을 갖추고도 정전을 막지 못했다는 점을 ‘선진 운영 기술의 역설’로 규정하며, 기존 기술의 단편적 적용만으로는 주력전원 계통의 불안정성을 방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허 교수는 “한국은 고립 계통이므로 사전 예방과 복원력 중심의 설계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 강조하며, “TSO(전력거래소)와 DSO(한전) 간 통합 관제 부재가 핵심 취약점”이라고 제기했다.

 

전력거래소 최홍석 계통혁신처장은 재생에너지와 동기발전기가 혼재하는 현재를 자동차와 마차가 공존하던 과도기에 비유했다. 최 처장은 “사고의 본질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이를 수용하는 제도·운영 체계의 부재에 있다”고 진단하며, “12차 전기본에 계통 안정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이 반드시 명시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언론계 토론자로 나선 이투뉴스 이상복 기자는 스페인 정전을 재생에너지 탓으로 단순화하는 프레임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자는 “정확한 진단 없이는 올바른 처방과 재발 방지를 기대할 수 없다”며, 호남지역 과전압 상시화, 심야 수도권 과전압, 대규모 재생에너지 단지의 인버터 진동 발생 등 국내 전력망에 이미 전조증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경고했다. 그는 “지금의 공백은 기술이 아니라 정책 리더십”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외부 지원 불가한 ‘고립 계통’ 한국…철저한 사전 대비 필수

좌장을 맡은 홍종호 교수(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고문)는 토론을 마무리하며 한국 전력망의 구조적 특수성에 따른 철저한 사전 대비를 주문했다.

 


홍종호 교수는 “스페인은 인접국과 전력망이 연결돼 있어 대규모 정전에도 15시간 27분 만에 복구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외부 연계망이 전혀 없는 고립 계통이라 사고 발생 시 외부 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패널들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는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력망 안정화는 반드시 함께 가야 할 수레바퀴의 양축”이라며 “한전·전력거래소·발전사 간 통합 대응 체계 구축과 정기 합동훈련 의무화 등 실질적인 재난 대비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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