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시민들 지켜 낸 ‘태화강 십리대숲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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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시민들 지켜 낸 ‘태화강 십리대숲길’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6)  
  • 기사등록 2024-03-02 08:5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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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다시 발길을 돌려 서생포에 있는 왜성(倭城)으로 올라간다. 서생면 진하리 성내마을 뒷산에 위치한 서생포왜성(울산시문화재 자료 제8호)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다음 해인 1593년(선조26년) 5월부터 왜장(倭將)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지휘해 돌로 쌓은 일본식 산성이다. 

 

서생포왜성.

서생포왜성 벚꽃봉우리.

해발 133m의 산정(山頂)에 내성을 쌓고, 경사면을 이용해 복잡한 구조의 2단·3단의 부곽(副廓)을 두었다. 내성은 성벽이 무너져 흐트러져 있는데, 언제 심어졌는지 모르는 벚꽃만 망울망울 봉우리를 맺은 채 터질 날만을 기다린다. 

 

복구 중인 창표당.

의병장 사명대사는 1594년(선조 27년)부터 네 차례에 걸쳐 평화교섭을 통해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1598년(선조31년) 명나라 장군 마귀(麻貴)의 도움으로 성을 찾았고, 그 후 왜적과 싸우다가 전사한 53명의 충신들을 배향(配享)하기 위해 파괴돼 없어진 창표당(蒼表堂)을 왜성 입구에 복원하고 있다. 

 

서생포왜성 진달래.

성벽을 쌓기 위해 동원돼 모진 고생을 다하다 가신 영령들의 한이 깃들었는지 이곳 곳곳에 피기 시작한 진달래는 핏빛으로 더 붉게 보인다.

 

십리대밭 숲.

오늘의 대미는 태화강 십리대숲길에서 장식한다. 태화강을 따라 대나무 숲이 십리(4㎞)에 걸쳐 있다고 해서 ‘십리대숲’이라고 부른다. 

 

십리대밭 숲길.

태화강.

고려 중기의 기록과 1749년 울산읍지에도 기록이 나오지만, 일제 때 큰 홍수로 태화강변이 수몰됐을 때 한 일본인이 땅을 헐값에 사들여 대숲을 조성했고, 그 후 주민들의 참여로 대나무 숲이 됐다. 한때 이곳이 주택지로 개발될 위기였으나, 시민들의 반대로 철회되고, 친환경조성사업을 벌여 지금은 울산을 대표하는 강변 생태공원으로 자리 잡았다.

 

십리대밭교.

사람만 통행이 가능한 태화강 십리대밭교는 울산시민의 뜻에 따라 고래와 백로를 형상화한 비대칭형 아치교로써 역동적인 울산의 미래와 무한한 발전 가능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해 생태도시를 표현한 것이란다. 

 

처용 팽나무.

십리대밭교 부근에는 ‘처용팽나무’가 서있다. 이 나무는 원래 온산읍 처용리에서 300여 년 동안을 자생하던 팽나무로, 이 지역이 산업단지 조성공사로 사라질 위기에 쳐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심어 또 하나의 태화강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아침의 하늘은 흐리다. 어제보다 일찍 서둘러 처용암으로 이동한다. 처용암은 울산 남구 황성동에 있으며, 울산시기념물(제4호, 1997년 10월)로 지정됐다. 

 

처용암.

신라 헌강왕 때 개운포에 와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안개와 구름이 심해 앞을 볼 수 없자, 일관(日官)이 “용(龍)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한다”고 말하하자, 왕이 곧 명을 내려 근처인 청량면에 용을 위한 망해사를 세우도록 했다. 그러자 운무는 걷히고 해가 떠올라 지역 이름이 개운포가 됐고, 일곱 왕자를 거느린 용왕이 올라와 춤을 추었는데, 그 아들 중 하나인 처용이 경주로 가서 ‘급간’이란 벼슬과 아내를 얻어 나랏일을 도왔다. 처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이 바위가 처용암이다.

 

슬도와 방어진 등대.

처용암에서 방어진항의 옆에 있는 슬도(瑟島)로 간다. 슬도는 바위구멍 사이로 넘나드는 파도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구슬프게 들린다고 해서 거문고 ‘슬(瑟)’ 자를 써서 ‘슬도’라고 한다. 방어진은 태화강 하구의 동쪽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때는 왜(倭)의 군사기지로 삼았던 곳이다. 방어진항은 천연의 항구로 울산만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울산시민들의 휴식처로 각광 받고 있다.

 

소리체험관 해변 나팔에서는 파도소리에 맞춰 음악이 흘러나오고, 슬도에서 등대를 뒤로하고 해변으로 난 길을 따라 대왕암공원으로 빠져 들어간다. 해안에는 모래 대신 자갈이 차지하고 있고 파도는 바위에 부서지며 추억을 만들어 준다. “파도소리 들리는 쓸쓸한 바닷가에 나 홀로 외로이 추억을 더듬네∼♩ 그대 내 곁을 떠나 멀리 있다하여도 내 마음 속 깊이 떠나지 않는 꿈 서러워라∼♬♩” 안다성이 부른 ‘바닷가에서’(박춘석 작사 작곡) 노랫말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온다.

 

해변의 소리체험관 나팔.

울산 대왕암은 문무왕 왕비의 수중릉이란 설이 구전돼 왔다. 신라 제30대 문무왕이 죽은 후에 호국대룡이 되어 불법을 숭상하고, 나라를 수호하려 한다고 하여 경주에 수중릉을 만들었다. 

 

대왕암 가는 해변과 대왕암.

왕비도 세상을 떠난 뒤에 삼국통일을 이룬 문무왕의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龍)이 되어 하늘을 날아 울산의 큰 바위 밑으로 잠겨 용신(龍神)이 됐다고 한다. 울산의 대왕암은 쪽빛 바다 위로 솟은 황색바위와 그 틈새로 자란 곰솔들이 자연의 질긴 생명을 웅변한다.

 

대왕암.

기암절벽(奇巖絶壁)들을 오르내리며 혼이 반쯤 빠져나간다. 바다 건너 조선소(造船所)의 타워크레인들은 하늘을 향해 받들어 총! 자세를 취하고 있고, 대왕암공원 북단의 야외무대에서는 즉석 음악회가 열린다. 

 

야외무대에서.

대왕암공원에는 수령(樹齡) 100년 이상이 된 곰솔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일제가 1906년 이곳을 울산의 끝이라는 의미로 울기(蔚埼)공원으로 이름 지었으나, 일제청산 차원에서 2004년 대왕암공원으로 바꿨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조선소.

곰솔은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에 ‘해송(海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잎이 곰 같이 억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또 수피(樹皮)가 검다고 하여 ‘검은소나무’, ‘흑송’(黑松), ‘먹솔’이라는 여러 이름을 같이 가지고 있다. 초기의 성장속도는 일반소나무 보다 훨씬 빠르게 자라지만 나중에는 성장속도가 느려 일반소나무에 뒤진다고 한다.(정유순의 ‘태안해변길을 걸으며’에서 인용)

 

대왕암공원 곰솔밭.

대왕암솔밭공원을 지나면 울산 동구 일산해변의 백사장이 펼쳐진다. 마치 시위가 팽팽하게 매여진 활처럼 곡선을 이룬 해변은 벌써 여름을 부른다. 조반을 일찍 한 탓인지 벌써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미리 예약한 식당에 조금 이르게 갔더니 다른 예약손님 때문에 준비가 덜 됐다고 주인은 짜증부터 부린다. 약속시간을 칼 같이 맞춘다면 서로 불편이야 없겠지만 사정에 따라 다소 이르거나 늦을 수도 있거늘 먼 길 걸어온 나그네에게 얼굴을 붉히며 너무 나무란다. 이곳 인심이 다 그런 것인가? 

 

울산 동구 일산해변 원경.

일산해안 북쪽 끝 고개를 넘으면 현대중공업 조선소(造船所)가 나온다. 조선 경기의 세계적인 불황으로 다들 힘들어하지만, 고 정주영(1915년 11월∼2001년 3월) 회장이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 한 장과 울산 미포만의 모래밭 사진 한 장, 5만분의 1 지도 한 장, 그리고 영국의 스코트 리스코우 조선소에서 빌린 26만톤급 유조선 도면 한 장을 들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조선 두 척을 첫 수주한 후 불과 10여 년 만에 한국을 세계 1위의 조선강국을 만들어 놓은 곳이다. 

 

현대조선소.

현대조선소를 지나 봉대산(190m) 아래로 지나가면 하기해수욕장이 나오고, 해안을 따라 걸어가면 주전항이 나온다. 주전돌미역은 산모(産母)에게 효과가 좋다고 소문난 미역이다. 

 

주전 돌미역 지정판매점 간판.

깊은 바닷속에서 매일 반복되는 썰물과 밀물을 견디며 자라는 돌미역을 해녀들이 직접 물질로 채취한다. 파도가 거세면 채취하는 양이 줄어들어 값이 오른다고 한다. ‘주전 돌미역 지정판매점’이란 표찰이 문패처럼 집집마다 걸려있다.

 

몽돌여인 김순연 시인의 집.

해변마을 ‘몽돌여인 김순연 시인의 집’ 담벼락에는 시들이 전설처럼 주저리주저리 열렸고 주전항의 빨간 등대는 절마당의 불탑마냥 바다를 지키며, 가지가 무성한 곰솔 한 그루도 거리의 수호신인양 마을을 지킨다. 

 

곰솔.

주전 몽돌해변.

주전항을 지나면 바로 동해에서는 보기 드문 검정 몽돌들이 약1.5㎞의 해변에 깔려 있다. 울산시는 남구의 주전몽돌해변과 북구의 강동해변까지 포함한 자갈밭을 울산 12경 중 하나로 선정했다고 한다. 

 

용바위의 용.

주전몽돌해안을 벗어나면 울산 북구 구암마을이 나오고, 당사항 직전에는 뱀과 거북이가 이전투구(泥田鬪狗)하다가 뱀만 용이 되어 승천했다는 용바위가 있다. 당사항은 울산 북구에 있는 작은 어항이다. 

 

주전몽돌해안에서 정자항까지는 길이 편안하여 발걸음도 가볍다. 주변의 갯바위 낚시꾼은 놀래미를 낚았다고 자랑한다. 정자항은 지나오면서 보아온 다른 어항들보다 배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고, 막 들어온 배에서는 물고기를 하역(荷役)하느라 바쁘다.

 

정자해수욕장.

곡선이 완만한 정자해수욕장은 물빛이 투명하지만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초록빛이 오늘은 덜한 것 같다. 

 

문화쉼터 몽돌.

하늘과 바다사이가 수평선이라면 동으로 한없이 뻗은 동해바다는 분명 하늘과 맞닿을 것 같다. 수평선 너머 눈길이 갈 수 있는 곳까지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그곳에 이번 여정의 끝이 있었다. 문화쉼터 몽돌과 함께.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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