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캠룹스】운전을 오래 한 사람도 낯선 외국에서 핸들을 잡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특히 눈이 내려 기상이 좋지 않은 날은 더욱 긴장하기 마련이다.
밤에 왔던 눈이 아침에도 그치지 않고 약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구글맵의 도움을 받아 캠룹스(Kamloops)에서 동쪽 캘거리 방향의 ‘슈스왑 레이크(Shuswap Lake)’로 향했다. 목적지 경로에 위치한 ‘스카치 크릭(Scotch Creek)’ 일대가 지난 2023년 8월 대형산불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접했기에 잠시 거쳐 가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눈길 운전.
캐나다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트랜스 캐나다 하이웨이(Trans-Canada Highway)’ 캠룹스에서 동쪽으로 눈길 운전 65km 구간을 조심스럽게 이어가다 ‘체이스(Chase)’라는 작은 마을로 들어서면서 잠시 긴장도 풀고, 도로 노면 상태도 확인할 생각으로 차를 세웠다.
차가 주차한 곳에 세워진 상점 입간판.
캐나다 현지시간 2월 8일 오전 9시 40분(한국시간 2월 9일 오전 2시 40분), 차가 주차한 곳 맞은편 상점 앞에서 눈을 치우던 동양인이 다소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미국·캐나다의 작은 마을에서는 낯선 사람이 아침 시간에 상점 근처에 주차하면 주인이 강도로 오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담배를 꺼내면서 “제가 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Can I smoke here?)”라고 물었고, 그는 “괜찮아요(No problem )”라고 말했다.
최소한 내가 위험한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로 상대방을 안심시키면서 담배를 피고 있는데, 옆으로 다가와 “한국분이세요”라고 한국말로 물었다. 나도 그가 중국인으로 알았던 터라 다소 놀라고, 한편으로는 반가워서 “네 맞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담배 피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 한국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체이스 편의점 카페(CHASE GROCETERIA)’.
내가 캐나다 교민이 아니고,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체이스 편의점 카페(CHASE GROCETERIA)’ 주인 박창화(75)씨는 자신의 가게에서 우리 부부에게 커피를 대접하겠다고 제안했다.
박창화씨 소유의 차량 현대 '투싼'.
편의점 카페 앞에는 박창화씨 소유의 차량 현대 '투싼'이 주차돼 있었고, 휴대폰도 삼성전자 갤럭시를 사용했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서 내가 명함을 건네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자, 박창화씨는 점포 인근 자택에 있던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에서 기자분이 오셨는데, 어서 가게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창화·박미경씨 부부.
박창화씨는 1970년대 먼저 캐나다에 정착한 형제를 따라 1992년 이민 온 케이스다. 밴쿠버에서 2년 동안 생활하다 부인 박미경(65)씨가 개척교회 목사님을 쫓아 체이스 이주를 제안해 1994년부터 30년 동안 거주하고 있다.
충남 보령에서 태어난 박창화씨는 대천에서 중학교를 나온 뒤 서울에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했다. ROTC 학사장교로 군 복무를 마친 뒤 현대건설에 입사해 중동, 독일, 인도 등 세계 각국을 돌며 근무하다 퇴직했다.
체이스 편의점 카페 내부.해외근무를 많이 했던 박창화씨는 “1980년 5.18 당시도 고국에 있는 가족·지인들보다 먼저 외신을 통해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해외근무 중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겼다. 1981년 이스라엘에서 이라크 원전 폭격할 당시 바그다드에 근무했었다. 이란과 이라크가 전쟁 중이던 1981년 이라크 바그다드 중앙은행이 폭격당했을 때도 현장 인근에 있었다. 앞서 1980년 이란이 쿠웨이트를 폭격할 당시에는 항만 건설을 위해 쿠웨이트에 체류했다고 한다.
박창화씨는 “캐나다는 원칙을 준수하는 사회 시스템을 지니고 있고, 캐나다 사람들은 매우 검소하다”며 “체면을 차리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허례허식이 없고,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긍정적인 사고로 소통을 즐기는 박창화씨에게 한국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은 ‘박청춘’이다. 캐나다 현지 주민들은 박씨를 대할 때마다 친근감과 존경의 의미를 담아 ‘Hi Boss!(안녕하세요 대장)’라고 인사한다. 박씨는 “잠에서 깨 눈을 뜨면 출근할 곳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며 “소득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하는 삶이 행복한 가치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씨는 “편한 옷차림으로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내가 입은 옷이 거슬렀는지 친구들이 세 벌의 옷을 사줬다”며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온 적이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10살 차이인 부인을 소개하면서 “내 본처”라는 말을 반복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박미경씨는 “캐나다로 이민 오던 해, 큰딸은 초등학교 3학년이었고, 5살 아래 둘째 딸, 막내아들은 세 살에 불과했다”며 “가장 신경 쓰였던 큰딸이 언어장벽 등 많은 어려움을 잘 이겨내 줘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고 말했다.
유튜브 채널 ‘연어고을 이야기’.
박미경씨는 @shalom923•76이라는 아이디로 유튜브 채널 ‘연어고을 이야기’를 운영하면서 소박하고, 여유로운 캐나다 산촌생활을 담아내고 있다.
박창화·박미경씨 부부는 성실하고, 모범적인 이민생활을 지속해 삼남매를 훌륭하게 교육시켰다. 출가한 큰딸은 외손자 2명을 낳았고, 미혼인 동생 둘과 함께 각각 토론토에 거주하고 있다.
박창화씨는 “인도출신 이민자와 시리아, 콩고, 남아공, 버마를 비롯해 니카라과, 과테말라 등 중남미 등에서 난민을 많이 받아들인 영향 등으로 작년에 캐나다 인구가 4천만명을 돌파했다”며 “광역 체이스의 인구는 1만2천명 가량이고, 소재지에 2500명 정도가 거주하는데, 이중 교포는 10명 가량”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최근 캠룹스에 노숙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택시기사와 월마트, 코스트코 등 대부분의 서비스업 종사자 중 인도 사람들의 비중이 크게 두드러지고 있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노스톰슨강.
사우스톰슨강. 캠룹스는 우리나라 남·북한강이 만나는 양평군 양수리처럼 노스톰슨강(North Thompson River)과 ‘사우스톰슨강(South Thompson River)’이 만나는 합류지점이다.
‘사카이 연어’ 대량 회귀로 유명한 아담스 강.
마을 입구 지도 좌측 하단에 연어가 회귀하는 지역을 연어 그림으로 표시해 놓고 있다.박씨는 “체이스의 ‘아담스 강(Adams River)’은 8월 하순부터 9월 하순까지 혼인색의 ‘사카이(sockeye) 연어(홍연어)’가 대량으로 회귀하는 곳으로 유명하다”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세계 각국의 여러 매체에서 취재하고 갔다”고 말했다.
박창화·박미경씨 부부가 내놓은 간식.
‘체이스 편의점 카페’에서 교포 부부로부터 방사한 닭이 낳은 유정란과 한국에서 직접 공수해 온 가래떡, 조청, 과일, 커피 등을 대접받으며, 미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자리를 떠야 했다.
대형산불로 처참하게 타버린 ‘스카치 크릭’의 나무들.한편 당초 목적지 중 한 곳인 ‘스카치 크릭’에서는 2023년 8월경 산불로 인해 처참하게 타버린 나무들을 직접 목격했다. 최근 미국 LA 대형산불 등 자연재해의 무서움을 재차 깨닫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