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서울】금성옥진 삼문을 지나면 거대한 성채 같은 문을 거쳐 중간문인 영성문이 나온다.
공묘 성채.
영성문.
영성문(櫺星門)은 맹묘에서도 있었는데 그 규모는 이곳 공묘가 훨씬 더 크다. ‘영성(櫺星)’은 ‘옛날 전설에서 천상에 있는 별로, 고대 제왕을 제사 지낼 때는 이 별에 대해 의식을 진행했고, 공자도 이들 제왕과 동격’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참고로 도교(道敎)에서는 북두칠성을 영성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중문 ‘태화원기’.
지성묘.
태화원기(太和元氣)라고 쓰인 삼문을 지나면 지성묘(至聖廟)가 나오고 공묘의 두 번째 문인 성시문(聖時門)도 나온다. 지성(至聖)이란 ‘슬기와 덕행이 뛰어난 성인’을 가리키는 말로 공자는 ‘성인 중의 성인’이라는 뜻 같다. 맹자는 아성(亞聖)으로 부르는데, 이는 공자가 지성이면 맹자는 이에 ‘버금가는 성인’이라는 뜻 같다. ‘태화원기’는 유가사상이 우주 만물의 근본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성시문.
노(魯)나라 애공(哀公)은 공자의 사후 2년이 되던 해에 공자의 집을 묘(廟)로 삼았다. 기원전 205년, 후에 전한을 세운 고조 유방(劉邦)은 노나라에 공묘에서 제물을 올리고 공자를 제사 지내는 제례를 실시했다. 황제는 즉위한 뒤나 전승 등 중요한 때에 곡부를 방문하게 됐다. 12명의 황제가 공자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직접 방문했다. 그 외 100명 이상의 황제가 제례를 위해 대리인을 파견한 것이 196회 이상이라고 한다.
홍도문.
공자 옛집 유적에는 대규모의 문묘(文廟)가 주(周)나라 때 창건됐다. 원래 세 부분으로 된 공자의 집은 수나라 대업 7년(611년)에 묘소를 재건할 때 철거됐다. 송나라 때인 1012년 및 1094년(소성 원년)에 3개의 전각 군과 4개의 정원을 재건하고, 그 주위에 총 460개의 방을 지어 많은 궁전 건축이 가미됐다. 문화대혁명 때에 봉건주의의 상징으로서 파괴의 대상이 됐지만, 문화혁명 종료 후에 복구공사가 진행돼 현재에 이른다.
대중문.
금나라 말기에는 화재와 약탈로 공묘는 파괴됐다. 그 후 원나라 초기인 1302년(대덕 6년)에 공묘가 재건돼 1331년(지순 2년)에는 공자묘가 궁전과 같이 벽으로 둘러싸이게 됐다. 1499년(홍치 12년)에 다시 화재로 소실되고, 그 후 재건됐을 때에 공묘는 현재의 규모로 재건됐다. 건물이나 비석과 장식 등이 추가돼 현재의 형태를 지니게 됐다. 대중문(大中門)은 진정한 공묘의 정문이었다. 송나라 때 중화문(中和門)이란 이름으로 처음 세웠으며, 명·청대에 개명과 증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다.
어제(御製) 공자비.
공묘의 사원 건축군은 중국에서 자금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역사적 건축 군이다. 부지 면적은 1만6천㎢에 나무들로 덮인 넓은 부지에 높은 큰 지붕의 누각이 돌출돼 있다. 1499년에 발생한 화재 이후 대규모 개축 공사가 있어 명나라 조정의 도성인 자금성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묘(廟)의 주요부는 9개의 정원이 둘러싸듯이 건물이 배치돼 있고, 그 정원이나 건물은 남북으로 길이 1.3km의 직선상에 좌우대칭으로 늘어져 있다.
어제(御製) 비각.
어제(御製) 비.
나머지의 뜰을 둘러싸는 건축 군이 공묘의 심장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들은 황제의 색인 황색 기와를 얹고 주홍색의 외벽을 궁전으로 둘러싸, 주위에 있는 짙푸른 소나무와 뚜렷한 색 대조가 일어나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주요 건축 군으로 비석 등을 둔 전각이 있다. 이는 금나라에서 원대까지 1115년∼1368년의 건축한 건물들이다.
규문각.
규문각(奎文閣)은 1018년(천희 2년)에 장서루(藏書樓)로 축조돼 1504년(홍치 17년)과 1985년에 대규모 개수된 건물이다. 역대의 황제로부터 하사된 경서 등을 비치하고 있다. 금나라 때 중축하면서 규문각으로 개명했고, 1504년 명나라 때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청나라 때 곡부를 휩쓴 대지진에도 굳건하게 살아남아서 ‘중국을 대표하는 목조 건축’으로 꼽힌다.
규문각 편액.
대성문으로부터 전방의 세 개 궁전군은 좌우대칭으로 줄지어 있다. 동쪽의 동로(東路)는 시례당 등을 중심으로 공자의 오대조까지 제사를 지내는 묘다. 서쪽의 서로(西路)는 금사당 등 공자의 부모를 제사 지내는 묘로 학문소(學問所)라고 한다. 거대한 중로(中路)의 건축군은 대성전을 중심으로 공자나 선유(先儒), 선현들을 제사 지내고 있다. 모든 묘가 오전(五殿), 일사(一祠), 일각(一閣), 일단(一壇), 이당(二堂)·17비정(碑亭), 53 문방(門坊)을 갖추고 있어 황색 기와를 얹은 큰 소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대성문.
대성전.
대성전(大成殿)은 모든 건축군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가로 54m, 세로 34m, 높이는 32m에 이른다. 28개의 장식된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각각 6m의 높이와 0.8m의 직경으로 되어 있다. 각각 현지의 돌로 만들었다. 궁전 정면의 10개의 기둥은 휘몰아 감기는 용으로 장식돼 있다. 이러한 기둥은 황제가 곡부를 방문했을 때에는, 황제에 질투심을 일으키지 않도록 덮개를 걸 수 있었다고 한다. 대성전은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며, 예물을 올리는 장소다.
행단(杏壇).
대성전의 뜰에 있는 것은 행단(杏壇)이다. 이곳은 공자가 제자들에게 강학을 했던 곳으로 추측된다. 그때 살구나무 아래에서 가르친 것을 기념해 행단이라 이름 붙였다. 그래서 행단은 학문을 닦는 곳을 말한다. 행(杏)에 대한 나무는 은행나무, 살구나무 또는 앵두나무라는 뜻도 있다. 공묘(孔廟)에는 은행나무 대신 살구나무가 보이지만, 우리나라 성균관이나 지방의 향교와 서원 등에는 은행나무가 많은 이유가 행단에 있는 것 같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