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공자 태어난 석굴 니산 ‘부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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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공자 태어난 석굴 니산 ‘부자동’ 중국 산동성에서(15)   편집국 2026-05-31 08:00:02

【에코저널=서울】삼(공(三孔)을 둘러보고 산동성 곡부시 동남족 30㎞ 지점, 창평(昌平) 니산 동쪽 기슭에 있는 니산(尼山)을 찾아간다. 

 

니산 부자동(夫子洞) 가는길.

니산(尼山)은 산동성 남부 북경(北京)∼상해(上海)선 철도 동쪽의 사수(泗水) 이남의 구릉(丘陵)지대로 최고봉은 봉황산(鳳凰山, 649m)이다. 

 

부자동 표지석.

니산은 공자의 부모가 이곳에서 기도한 후 공자를 얻었다고 해서 공자의 이름을 ‘구(丘)’, 자를 ‘중니(仲尼)’라고 했고, 후손들은 이 산을 ‘니산(尼山)’이라고 부른다. 

 

부자동.

먼저 찾은 곳은 공자가 태어났다는 창평향(昌平鄕) 추읍(郰邑, 산동성 곡부)의 니산(尼山) 부자동이다. 부자동(夫子洞)은 중국이 만세사표(萬世師表)로 추앙하는 공자(孔子)가 태어난 곳으로 겨우 두 세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조그마한 석굴(石窟)이다. 이 석굴에서 아기를 출산하기엔 무척 좁고 낮은 동굴로 두어 명이 겨우 앉을 만한 편편한 돌덩이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부자동 유적 표지판.

공자(孔子, BC 551년∼BC 479년)는 춘추 전국시대에 노나라에서 아버지 숙량흘(叔梁紇)과 어머니 안징재(顔徵在)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안징재는 갓 출생한 아기의 괴상한 생김새에 놀라 신생아를 그곳에 두고 마을로 내려왔다가 그래도 모정(母情)에 끌려 다시 그곳을 찾았더니 봉황과 호랑이가 젖을 먹이고 있었다고 한다. 그 아이의 울음소리가 지금까지도 세상을 깨우치는 사표가 될 줄을 누가 알았으랴. 

 

공자 영정.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에게는 두 아내인 시씨(施氏)와 안징재, 첩 하나가 있었다. 시씨와의 사이에 딸 아홉, 첩한테 아들 맹피를 낳았으나. 맹피는 절름발이라 대를 잇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그러자 숙량흘은 66살에 10대의 안징재를 부인으로 들여 71살에 야합하여 공자를 낳았다. 예수가 마구간 말구유에서 태어났다면 공자는 조그마한 동굴에서 태어났다. 산동성 사수(泗水) 이남의 산 동쪽 기슭에 공자묘(孔子廟)·공모사(孔母祠) 등이 있다. 

 

니산서원 입구.

부자동 뒤에 있는 니산서원은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다. 앞쪽에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배치하고, 뒤쪽에 배움의 공간인 명륜당을 배치하는 형식이다. 

 

니산서원.

우리도 성균관과 전주·나주향교 등이 전묘후학의 배치를 했고, 대부분의 향교나 서원은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를 취했다. 평지에는 전묘후학의 형태고, 경사진 곳에서는 전학후묘를 취한다. 이는 묘(廟)에 모시는 분이 세상을 더 널리 보시고, 높은 가르침을 주시라는 의미라고 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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