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공가 77대손 연성군 대만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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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공가 77대손 연성군 대만서 사망 중국 산동성에서(13)   편집국 2026-05-24 08:00:01

【에코저널=서울】공부(孔府)는 공자를 제사 지내는 공묘 동쪽에 위치한다. ‘궐리가(闕里街)’라는 거리 끝에 공자의 직계 자손과 그 가족이 살았던 저택이 자리 잡고 있다. 

 

공부입구.

역대 왕조의 보호를 받고 있던 공자 직계 자손이 거주했기 때문에 중국 유수한 규모를 자랑하는 저택이었지만, 공가(孔家)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에 대만(타이완)으로 이주했다. 현재는 관광지로서 일반 공개되고 있다. 

 

‘공부입구(孔府入口)’라고 쓰인 매표소 건물 입구를 지나면 ‘시서예악(詩書禮樂)’의 편액을 단 건물이 나온다. 시서예악은 시경(詩經)·서경(書經)과 예(禮)와 음악(音樂)을 말한다. 논어(論語)에 의하면 ‘공자(孔子)의 학단(學團)에서는 ’시경‘과 ’서경‘의 학습과 예의(禮義)의 강습이 있었고, 음악의 교양이 요구됐다’고 해서 필수과목이 아닌가 생각된다. 

 

시서예악.

공가(孔家)는 공자에게 제사를 지내는 공묘와 공자와 그 일족의 묘소인 공림을 유지 관리하기 때문에 곡부(취푸)에 저택을 마련했다. 공가는 공묘의 각종 의식을 담당해 중국 역사상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넓은 농지를 소유·관리하는 대지주(大地主)다. 외관은 별로 웅장함은 없으나, 내부는 매우 화려하고, 다양한 문물이 소장돼 있다. 

 

공부 대문.

공가는 대대로 황제로부터 보호돼 벼슬이 주어졌다. 전한(前漢) 건국 후인 BC 195년, 고조 유방(劉邦)은 공자의 9대손인 공등(孔騰)을 봉사군(奉祀君)에 봉했고, 1055년(지화 2년) 송나라 왕조가 공가를 연성공(衍聖公)에 봉해지면서 이 저택을 ‘연성공부(衍聖公府)’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후 중화민국의 성립될 때까지 습위(襲位)됐다. 마지막 연성군은 77대손 공덕성(孔德成)으로 2008년 10월 대만에서 사망했다. 

 

공부의 측백나무.

최초의 저택은 공묘에 인접해 건설(1038년)됐지만, 1377년(홍무 10년)에 공묘로부터 약간 떨어진 위치로 옮겼다. 1503년(홍치 16년)에는 대규모 확장공사가 진행돼 객방은 560칸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공부는 1838년(도광 18년) 완전 개수 후 불과 47년 만인 1887년(광서 13년) 화재로 소실됐고, 2년 후 다시 재건됐다. 19세기(1800년대)에 진행된 복구비용은 모두 청나라가 부담했다.

 

공부 관람입구.

현재의 공부는 1만2470㎢의 면적에, 480개의 객방이 있는 152채의 건물로 구성돼 있다. 공부의 평면은 전통적인 중국의 저택 양식에서, 정문의 전방에 있는 공적구역과 후방에 있는 사적구역으로 구분돼 있다. 공적구역 부분은 칙사나 고관을 접견하고, 제례나 소유지 등에 관한 사무를 실시하는 장소다. 사적구역은 유교 상의 질서나 서열에 따라 거주자의 주거 공간이 구분된다. 연장자는 중앙의 큰 세 채의 건물을, 그 다음의 서열을 가진 사람이 동쪽 건물에 거주하고 있다. 

 

공부 전당루.

곡부의 현성 북문에서 공림의 정문까지는 1266m 길이의 직선로가 울창한 가로수 아래 ‘임도로(林道路)’로 불리는 도로가 있다. 


만고장춘(萬古長春).현성 출구에는 공자가 가장 사랑했던 제자 안회(顔回)의 묘인 안묘(顔廟)가 있고, 가로수길 중간에는 명대에 지어진 ‘만고장춘(萬古長春)’이라고 새겨진 문이 있다. 이 뜻은 “길고 긴 봄날”처럼 “공자의 사상이 천년만년 이어지라”는 의미 같다. 이 글씨는 청(淸)나라 옹정제(雍正帝)가 쓴 것으로 알려진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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