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서울】박물관을 나와 바쁘게 관림으로 이동한다. 관림(關林)은 삼국지의 영웅으로 촉(蜀)나라 무장인 관우의 수급(首級)이 묻힌 곳이다.
관림 입구.
중국인들 사이에서 “관우는 낙양을 베게 삼아 잠을 자고 몸은 당양(當陽)에 누웠으며, 혼은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800여 년 전 관우(關羽)는 손권에 사로 잡혀 참수당한 후 조조에게 목을 보내고, 시신은 당양에 묻었다. 조조도 향목(香木)으로 몸을 만들어 왕의 예우를 갖춰 낙양에 장사를 지낸다.
대문 우측에는 충의(忠義), 좌측에는 인용(仁勇)이라고 써 놓았다. 이는 황제로 추존될 때 부여된 시호의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호국보민정성수정익찬선덕관성대제(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護國保民精誠綏靖翊讚宣德關聖大帝)’에서 따온 문구(文句) 같다. 관우는 송나라 휘종 때인 1102년 충혜공의 공작 작위를 받았고, 1107년 무안왕에 봉해졌다. 명나라 신종 때인 1613년 관성대군, 청나라 선종 때인 1828년에는 관성대제에 봉해진다.
충의.
관우는 사후에 민간의 존중을 받는다. 민간에서 제사를 지내는 대상이 되어 ‘관공(關公)’으로 존칭된다. 역대조정에서는 그에게 작위를 봉한다. 청나라 때 광서제는 ‘무성(武聖)’으로 받들어 ‘문성(文聖)’인 공자(孔子)와 같은 반열에 올렸다. 묘호도 공자는 공림(孔林)으로, 관우는 관림(關林)으로 했다. 나중에는 ‘개천고불(蓋天古佛)’에 봉해서 불교에서도 그를 ‘가람보살(伽藍菩薩)’이라고 부른다.
인용.
대문으로 들어서니 충의와 인용을 쓴 깃발이 펄럭인다. 처음 지을 당시엔 대문이었는데, 바깥에 대문이 생겨 의문(儀門)이 됐다.
의문(儀門).
의문을 통과하니 너비 4m, 길이 35m의 석사어도(石獅御道)가 이어진다. 양쪽에 돌로 만든 사자가 52개씩 모두 104개가 도열해 있다. 이는 사당 건립 27년 후 낙양 상인들이 사업이 번창하고, 재물이 확충되기를 바라는 소원을 담아 기금을 모아 만들었다. 그래서 관우는 어느 순간 민간 신앙의 주인공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