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서울】낙양의 용문석굴에서 밤늦게 정주시로 달려와 곤한 잠을 자고 아침에는 안양에 있는 유리성에서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중국 하남성 안양시 위치도.
중국 안양(安陽)시는 하남성의 최북단에 위치한다. 성도인 정주(鄭州)시에서 북쪽으로 100km 떨어져 있으며, 인구는 530만 명이다. 안양은 황하 북쪽에 위치한 도시라서 하북(河北)성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의 안양(安養)시와 발음과 외래어표기법까지 같아 서로 자매결연 관계에 있다.
BC 2천년경 전설의 왕 전욱(顓頊)과 제곡(帝嚳)이 이곳에 수도를 정하고, 나라를 세웠다. BC14세기 초 상나라가 이곳에서 북쪽으로 2km 떨어진 곳에 수도 은을 세워서 보통 상(商)나라를 은(殷)나라라고도 한다. 이후 상이 멸망하게 되면서 은허(殷墟)유적지가 남아 있다. 남송(南宋)의 명장이자, 문장가인 악비(岳飛)와 재상이었던 한탁주(韓侂胄)의 출생지이기도 하다.
유리성 배치도.
유리성(羑里城)은 안양(安陽)시 탕음현(湯陰縣)에서 북쪽으로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주문왕이 7년간 갇힌 최초의 감옥이었다. 입구인 패방(牌坊) 중앙 철문에는 태극무늬가 있는데, 음(陰)의 머리에는 양의 점이, 양(陽)의 머리에는 음의 점이 만들어져 있다. 이는 음의 속에는 양이 숨어 있고, 양의 속에는 음이 숨어 있다는 의미 같다.
유리성 패방.
패방 좌측 벽에는 ‘易(역)’자가 새겨져 있다. 과연 역(易)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일까? 우선 이곳이 주역(周易)의 발상지라는 표시 같다. 고대 기록에 의하면 역은 애초에 하늘신(天神)·땅신(地祗)·종묘(宗廟)에 제사 지내거나 나라의 중대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자 할 때 사용하던 점서(占書)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즉 역의 기원이 거북점에 바탕을 둔 점복서(占卜書)의 형태로 인간사와 천지자연의 법칙을 반영한 것은 아니던가.
‘易(역)자.
패방 안으로 들어가면 주역을 들고 있는 주문왕의 동상이 있다. 주문왕(周文王, BC1152∼BC1056)은 주(周)나라의 15대 군주이며, 이름은 희창(姬昌)이다. 생전에 직위는 서백(西伯)이라는 제후(諸侯)의 지위였으나, 자신의 차남인 무왕 희발에 의해 문왕으로 추숭(追崇)돼 역사에 통상 주문왕으로 불린다. 아버지 계력(이름은 희계력)과 어머니 태임 사이에서 태어났다. 희창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농업, 천문, 지리에 능통했다.
주문왕 동상.
계력의 치세 당시 주나라가 기산(岐山)을 근거로 삼아 주변의 융적(戎狄)을 상대로 토벌해 세력을 넓혀가자, 주나라의 군주국인 상나라는 계력에게 상을 내린다는 명목으로 은(殷)으로 불러 서백에 봉하고, 감금한 뒤 구실을 붙여 살해했다. 계력의 뒤를 이어 주의 군주에 오른 희창은 백이(伯夷), 숙제(叔齊), 태전(太顚), 산의생(散宜生), 육웅(鬻熊), 신갑(辛甲) 등의 유능한 인재를 등용했으며, 강상(태공망, 呂尙으로도 함)을 군사로 삼았다.
주문왕유리성 비.
희창이 내정을 강화해 주나라의 세력이 강해지자 상(商)의 주왕(紂王)은 유리(羑里)에 가둔다. 희창은 이때 주역(周易)을 저술해 복희의 8괘를 64괘로 만들었다.
거안사위(居安思危, 안정된 상황에서도 위기를 생각하라).
하나라의 우임금이 낙수라는 강에서 거북이의 등에 있는 낙서(洛書)를 보고 8괘를 배치해 문왕8괘(후천8괘)를 만든 후 낙수의 서역을 바친다는 조건으로 포락지형(炮烙之刑)을 면했다. 주나라 미녀인 유신씨(有莘氏)의 딸과 명마인 려융(驪戎) 문마(文馬)을 바친 끝에 풀려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