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관우 본심 담은 비문 ‘관제시죽’

메뉴 검색
<와야(瓦也) 연재>관우 본심 담은 비문 ‘관제시죽’ 중국 하남성에서(9)   편집국 2026-07-26 08:00:02

【에코저널=서울】어도 끝에는 대전인 계성전(啓聖殿)과 딱 붙은 곳에는 제사를 지내는 배전(拜殿)이 있다. 향불 사이로 대전에 앉은 관우가 보인다. 

 

관우 상.

웅장한 기세가 높고도 높다는 기장숭고(氣壯嵩高) 편액도 보인다. 이 편액은 서태후(西太后)가 용문석굴과 함께 관림을 찾았다가 관우에게 분향한 후 현장에서 직접 써서 하사한 것이다. 관우는 황제의 격식에 맞게 12줄 면류관을 쓰고, 황금빛 비단 용포를 입었다. 북두칠성이 그려진 칠성판(七星板)을 들었다.

 

광소일월(光昭日月) 편액 걸린 재신전.

계성전 뒤는 재신전(財神殿)이다. 언제부터 재물의 신이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명나라 중기에 상업의 발달과 관련해 관우가 재신이 됐다고 추정한다. 신전에는 관우를 중심으로 주창과 관평이 있고, 재물과 이익을 불러온다는 동자 둘이 나란히 붙어있다. 중앙에 걸려 있는 광소일월(光昭日月)이란 편액은 ‘해와 달처럼 그 빛이 드러난다’는 뜻으로 서태후와 함께 왔던 광서제(光緖帝)가 썼다고 전해진다. 

 

오호전(五虎殿).

재신전 왼쪽 건물은 삼국지의 관우·장비·조운·황충·마초 등 오호장군을 위한 오호전(五虎殿) 있고, 오른쪽에는 부인인 호씨와 아들 관흥, 딸 관봉을 위한 성모전(聖母殿)이 있다. 아들 관흥은 제갈량의 총애를 받고 북벌에 참여한다. 딸 관봉은 손권이 사돈을 맺자고 했으나 관우가 거절했다. 혼란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서 오히려 신이 됐는지도 모른다. 

 

춘추(春秋)를 들고 있는 관우.

재신전 뒤는 침전인 춘추전(春秋殿)이다. 관우가 역사책인 춘추(春秋)를 들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정사 삼국지에 대한 배송지(裵松之)의 주석에 따르면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밤새 촛불을 켜고 즐겨 읽었다고 나온다. 관우는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나름 역사에 정통했다. 공자가 편찬했다는 춘추를 노나라 학자 좌구명(左丘明)이 주석서로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漢壽亭侯墓(한수정후묘)라고 쓰인 패방.

묘역 앞 패방 중앙에 ‘漢壽亭侯墓(한수정후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황제로부터 받은 한수지역을 다스리는 정후라는 관리의 묘라는 뜻이며, 정후는 황족이 아닌 사람에게 내리는 최고의 벼슬이다. 한때 조조는 관우의 마음을 끌기 위해 헌제(獻帝)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얻은 벼슬이다. 그 당시 한수지역은 오나라의 영토라 실권이 없었지만, 관우는 처음으로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벼슬을 소중하게 여겨 인장도 만들어 간직했다. 

 

관성대제(關聖大帝) 비.

패방과 무덤 사이에 팔각정에는 4.8m의 비석이 있다. 비문에 충의신무영우인용위현관성대제림(忠義神武靈佑仁勇威顯關聖大帝林)이라 새겼다. 팔각정은 강희제가 세운 비석을 보호하려고 건륭제가 세운 정자다. 강희제보다 앞선 순치제가 충의신무관성대제(忠義神武關聖大帝)를 하사했다. 강희제는 따로 봉호를 하지 않았다. 옹정제를 건너 건륭제는 순치제의 봉호 뒷자리에 영우(靈佑), 가경제는 인용(仁勇), 도광제는 위현(威顯)을 추가했다. 

 

팔각정 비각과 숲이 무성한 관우 무덤.

관림에는 수령이 대부분 300년이 넘은 측백나무가 빽빽하게 있는데, 가장 오래된 나무는 700년도 넘었다. 묘역은 전사후묘(前祠後墓)의 형태로 앞쪽에 사당을 배치하고, 뒤에 묘를 안치했다. 무덤은 담장으로 에워싸고 높이가 10m, 넓이가 250㎡정도다. 많은 사람들은 사당 앞에서 향을 사르고 소원을 빈다. 무덤 위에 나무가 많은 것은 자손이 번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청룡언월도를 전시한 도정(刀亭).

관우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다. 삼국지연의에 따르면, 유비(劉備)·장비(張飛)와 마을 대장간에서 만들었고, 무게는 82근에 달한다. 관우가 죽은 후 오나라의 장수 반장(潘璋)이 손권(孫權)으로부터 관우를 잡은 공로로 하사받아서 사용하다가, 관우의 차남 관흥이 반장을 죽임과 함께 원수도 갚음으로써 아버지의 청룡언월도를 되찾았다. 그 청룡언월도를 2012년에 민간인의 기증으로 지은 도정(刀亭)에 전시돼 있다. 

 

관제시죽(關帝詩竹).

대충 둘러보고 나오는데 들어갈 때 스쳤던 대리석에 새겨진 비문에 관심이 간다. 관우가 조조에게 붙잡혀 있을 때 자신의 충성심을 댓잎에 몰래 표현해 적은 ‘관제시죽(關帝詩竹)’은 관우의 굳은 본심을 보는 것 같다. 

 

동군(조조)의 호의에 감사하지 않고(不謝東君意 : 불사동군의)

붉고 푸르게 홀로 이름을 세우리니(丹靑獨立名 : 단청독립명)

고엽(관우)의 퇴색됨을 미워하지 않기를(莫嫌孤葉淡 : 막혐고엽담)

끝내 시들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終久不凋零 : 종구불조령)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관련기사

오피니언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