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에코저널=서울】전통천연염색작가 한광석 장인(匠人)의 작업장은 문덕초등학교 용암분교(폐교)를 개조해 만들었으며, 교실에는 그의 예술을 전수받고자 벌써 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입구.
남도전통문화연구소 이사장이자 천연염색 명장인 한광석(66) 장인은 우리 땅에서 기른 쪽풀을 삶고 찌고 띄우고, 썩혀서 긴 시간을 거친다. 사람 손으로 빚어 ‘아름답다’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탄에 마지않는 색감이 우러나게 하면서 전라도를 지키고 전라도의 색을 뽑아내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젊어서 한참 일을 벌인 때는 서울 학고재 등 국내 최고의 화랑에서 전시도 여러 차례 개최해 주목을 받았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게 물들인 조선 무명으로 고급 옷을 만들게 한 뒤 신라호텔, 하얏트호텔, 힐튼호텔 등에서 패션쇼도 열었다. 이 때 양장과 한복이 어우러지는 패션쇼를 열어 전통염색 천을 사용한 옷의 값을 유명 명품 옷값에 버금가도록 만들기도 했다.
(사)남도전통문화연구소 건물.
한광석 장인은 20대 중반부터 쪽 염색을 시작했다. 1982년께 고향 벌교의 논에 쪽 씨앗을 심었는데, 처음부터 잘 된 것은 아니었다. 실패를 반복하다 1993년에 자기만의 ‘쪽색’을 뽑아냈다. 염색을 한 계기는 농담처럼 하는 얘기로 ‘남이 하지 않은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어’ 선택했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밥벌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에서 선택된 것이다.
한광석 장인.
봄에 씨앗을 뿌려 쪽풀이 자라나 꽃대가 올라오기 직전 베어서 큰 옹기 항아리에 넣고 물을 부은 뒤 돌멩이로 눌러 썩혔다가 썩은 잎과 줄기를 걷어내면 푸른색 물만 남는다. 여기에 석회를 넣으면 석회와 색소는 바닥에 가라앉게 된다. 물에 콩대, 메밀대, 찰 볏짚 등을 태워 만든 재로 4~5배 희석해 섞어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실온에 보관하면 진한 쪽빛깔이 우러나온다. 흰색 무명베를 담갔다 말리기를 반복해 원하는 색깔이 나올 때까지 수 없는 반복 작업이 필수적이다.
쪽빛으로 물들인 무명베.
‘전통’이란 말에 빠지면서 특수한 직업으로도 생각했고, 그것이 싫지 않았다. 그러다 더 충실하기 위해 ‘전통’을 깊이 공부했고, 여러 가지 분야를 더 넓게 파고들었다. 모 대통령 취임식 광화문 문화 행사 때는 오방색(五方色) 큰 복주머니를 만들어 선보였다가 지역 사람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뻔도 했다고 한다.
쪽빛 염색 무명베.
전시실 벽에 걸린 고쟁이가 눈길을 끈다. 고쟁이는 한복에서 속곳 위 단속곳 밑에 입는 여름용 여자 속옷이다. 남자 바지와 비슷한 모양이나 밑이 터졌고 가랑이의 통이 넓다. 감은 무명베·모시 등을 사용해 홑으로 박아서 만든다. 입을 때는 오른편에 아귀를 내고, 허리에 달린 앞 끈을 뒤로 돌려 앞으로 오게한 뒤 뒤 끈을 앞으로 가져다 서로 잡아맨다. 요즘은 거의 입지 않고 수의(壽衣)로 쓴다고 하는데, 벽에는 안동지방의 살창고쟁이와 전라도지방의 고쟁이가 나란히 걸려 있다.
전주지방 고쟁이.
살창고쟁이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여자들이 입던 여름철 속옷으로 어느 지역에서나 입었는데, 안동에서는 다른 지역에 비해 오랫동안 전통복식의 풍습이 이어졌다. 밑이 트인 개당고 형태로 주로 뒤쪽으로 트인 구멍의 형태가 살창 같다고 하여 ‘살창고쟁이’라고 불렀다. 살창고쟁이의 뚫린 구멍으로 신부의 흉이 새어나가 시집살이가 수월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시댁에서 예의를 차리기 위해 여러 겹의 속옷을 입어야 하는 딸이 안쓰러워 친정에서 신부의 혼수품으로 챙겨 보냈다고 한다.
안동지방의 살창고쟁이.
다른 방에는 달항아리에 우리의 전통 물감을 형형색색으로 입히는 작업과 전시를 한다. 달항아리는 눈처럼 흰 바탕색과 둥근 형태가 보름달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형형색색의 달항아리.
규모가 커서 위와 아래의 몸통을 따로 만들어 붙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만든 사람의 손맛에 따라 둥근 형태가 각각 다르다고 한다. 이러한 항아리에 백자 외에 쪽빛 등 여러 색을 입히는 작업이 단순하고 쉬운 작업은 아닌 것 같다.
시간에 쫓겨 오래 머물지 못해 아쉽다. 다음에 시간을 내어 한광석 장인의 깊은 속내를 알아보고 싶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