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닌자’ 양성하는 오노미치 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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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닌자’ 양성하는 오노미치 게스트하우스
  • 기사등록 2024-05-10 12:00:04
  • 기사수정 2024-05-18 0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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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오노미치】일본 도착 첫날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Guest house)’에서 ‘닌자(忍者)’가 되는 아주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일본 방문 첫날 묵었던 오노미치 게스트하우스.

대부분 외국 관광객들이 손님인 일본 오노미치(尾道)의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닌자처럼 매우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복면을 쓰고 검정색 옷을 입은 ‘닌자’가 한밤에 지붕 위를 쏜살같이 날 듯 달리고, 우리나라 조선시대에 자객이 인기척 없이 몰래 잠입해 활동하는 것처럼 최대한 조용히 지냈다. 

 

2층으로 된 게스트하우스.

게스트하우스 2층 방에서 내려다 본 모습. 가운데 로프웨이 탑승장이 보인다.

여행 예약 플랫폼 아고다(Agoda)를 통해 예약한 오노미치 로프웨이 탑승장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는 원래 기모노 가게를 운영했던 전 여주인이 94년 전에 다실로 운영했다고 한다. 일본 전통양식의 오래된 2층 구조 목조건물이었고, 2층의 방을 예약했다.

 

게스트하우스로 향하는 골목.게스트하우스는 구글맵을 보고도 찾아가기 헷갈리기 쉬운 곳에 있다. 차량 통행이 불가능한 좁은 오르막 골목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무거운 캐리어를 갖고 다니기엔 다소 벅차다.

 

게스트하우스 대문에 채워진 자전거 자물쇠.체크인은 비대면으로 이뤄지는데, 어렵게 찾아간 숙소 대문에 다이소에서 봤던 4개 번호로 여는 자전거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체크아웃하고 길을 나서던 영국인 여행객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으면 난감한 상황이 이어질 뻔했다.

 

게스트하우스 현관.

밤부터 아침까지 조용히 하고, 전기 스위치를 꼭 끄라는 안내.

실내화를 신고 다다미 바닥을 걷지 말라는 표시.

샤워실 보일러 사용 주의사항.조용히 해야 하는 등 숙소 내에서 지켜야 할 룰 안내.

닌자 그림을 곁들인 주의사항 안내.

숙소에 들어서자 곳곳에 주의사항을 전하는 문구가 여행객을 반긴다. “밤부터 아침까지는 조용히 하고, 전기 스위치를 잊지 말고, 꺼야 한다”부터 “다다미 바닥은 실내화를 신지 말아야 한다”, “방바닥과 계단을 걸을 때 조용히 해달라”, “공동 샤워실에서는 나무로 만든 벽이 젖지 않도록 앉아서 샤워하라”는 경고에 가까운 당부까지 눈에 띈다. 압권은 그림과 함께 적어 놓은 “닌자 스타일로 조용히 지내라”는 내용이다. 

 

게스트 하우스의 역사, 창문커튼 사용 수칙과 무료 와이파이를 주변에서 이용하라는 등의 내용을 담은 메모.

일부 불편한 부분이 있어도 참아달라는 요구를 적어 놓은 메모도 있다. 오래된 집 컨셉으로 와이파이(Wi-Fi)를 제공하지 않으니, 필요하면 근처 로프웨이 정류장 앞에서 무료 와이파이를 이용하라고 권한다. 샤워기는 보일러에 연결되지 않으니, 목욕을 하고 싶으면 게스트하우스 인근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라는 내용 등이다. 

 

“침대가 아닌 다다미 바닥에서 하루쯤 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큰 오산이었다는 확신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했다.

 

미닫이 문.

나무계단.

오래돼 아귀가 잘 맞지 않는 미닫이문은 열고 닫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나무 계단도 걸을 때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삐꺽’하는 소리가 났다. 결국 밤에 화장실을 가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싶어도 소리내기 싫어 한참을 참았다. 

 

방음이 되지 않아 낮은 목소리로 대화해도 옆방까지 정확하게 들린다. 해안철도를 달리는 기차(화물열차 등) 소리는 깊은 수면을 방해했다. 

 

다다미 복도 양옆으로 방이 나뉘어 있다.

마주 보이는 방에 묵은 백인들도 사정이 비슷했다. 똑같은 절차를 밟아 게스트 하우스를 찾은 뒤 미리 알지 못했던 룰을 지키려고, 낮과 밤 언제나 매우 조심스럽게 숙소 내부를 오갔다.

 

다른 곳에서 만난 미국, 유럽 등에서 온 서양사람 대부분은 표정이 밝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하지만,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그들의 표정은 무거웠고,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도 매우 낮은 톤이었다. 어떤 프랑스인은 동양인인 나를 게스트 하우스 주인으로 오인하고, 조심스럽게 대하기도 했다.

 

사실 숙소 도착 이전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입실 전부터 구글폼으로 숙소 이용과 관련해 ‘오후 4시 30분 입실, 오전 10시 퇴실’ 규정을 비롯한 몇 가지 까다로운 내용의 메시지가 왔기 때문이다. 숙소에 일찍 도착했지만, 이른 입실 타협은 엄두도 낼 수 없는 분위기였다. 

 

묵었던 방 내부.

일본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旅館)’은 시설을 좋은 곳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지나치게 과한 수준의 일본에서 여러 사람이 묵는 오래된 전통가옥 형태의 가정집 게스트 하우스는 절대 찾지 않을 생각이다.

 

결국 출국 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일본에 도착한 이튿날도 잠을 설치게 됐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며, 히로시마에서의 이틀 일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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