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칸쿤】멕시코 칸쿤 리조트에서 만난 할머니 두 분께 놀라는 일이 반복됐다.
멕시코 칸쿤공항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리비에라 마야(Riviera Maya)에 자리한 그랜드 선셋 프린세스 호텔 앤 리조트(Grand Sunset Princess Hotel and Resort, 이하 ‘그랜드 선셋 프린세스’) 도착 직후 새벽 3시경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다 홀로 찾은 리조트 내 바에서 캐나다 오타와(Ottawa)에서 온 엠마(Emma, 82)와 글로리아(Gloria, 74)를 처음 만났다.
적지 않은 연세의 두 분이 새벽에 칵테일을 드시는 모습이 의외했다. 사람이 많지 않아 자연스럽게 합석했는데, 두 분은 내가 권하는 ‘데낄라 칵테일’을 두 잔 연속 받아 마셨다.
엠마와 글로리아 모두 행동과 말투가 무척 느렸다. 겉모습은 걷기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보였는데, 술은 사양하지 않았다. 결국 피곤했던 내가 먼저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다운타운 쇼핑을 위해 리조트 전기카트로 이동하는 엠마(좌측)와 글로리아.
다음날 낮에는 우연히 산책로에서 두 분을 다시 만났다. 리조트가 커서 서로 자주 마주치는 일이 드문데, 의외였다. 대부분의 투숙객들이 한낮의 무더위를 피해 리조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과 달리 다운타운으로 쇼핑을 가시는 길이였다. 리조트 직원에게 전기카트로 로비까지 데려 달라고 요청한 상태였다. 이후 호텔 버스로 다운타운을 가신다고 했다.
이날 저녁에는 가수가 노래하는 야외 바에서 두 분을 다시 만났다. 낮에 쇼핑이 즐거웠느냐는 내 질문에 엠마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혼났다”고 말했다. 글로리아는 공연 관람 도중 느린 걸음으로 무대에 나가 가수에게 “오늘이 내 생일”이라며, 축하 노래를 요청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무대로 소환돼 글로리아 옆에서 박수를 치며 신청곡에 맞춰 춤을 춰야 했다.
좌측부터 글로리아와 엠마.
이튿날 어렵게 예약한 이탈리안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출입구 옆 바에서 칵테일을 드시는 두 분을 다시 만났다. 젊은이들도 리조트의 이탈리안·프렌치·일식·타이 레스토랑 저녁식사 예약이 쉽지 않은데, 두 분은 예약한 스테이크하우스에서 식사를 마친 뒤였다.
글로리아가 공연 관람 중 촬영한 휴대폰 사진을 확인하고 있다.
리조트에서는 매일 저녁 극장에서 장르를 바꿔가며 공연이 열리는데, 자연스럽게 함께 관람했다. 글로리아는 공연 중간중간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공연이 끝난 후 함께 바(Bar)로 이동해 칵테일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엠마와 글로리아는 캐나다 연방정부 기관인 국세청(CRA; Canada Revenue Agency)에서 함께 근무했던 인연으로 현재까지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엠마는 35년 근무한 뒤 20년 전 퇴직했고, 글로리아는 25년 근무 후 10년 전 퇴직했다. 두 분은 넉넉한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글로리아.
두 분 모두 매우 솔직한 스타일이었다. 자신들의 가정사도 숨김없이 밝혔다. 글로리아는 크로아티아(구 유고슬라비아) 출신 부모님을 따라 7살 때 캐나다로 이민을 왔다.
글로리아는 아들 1명과 15살 손녀 1명을 슬하에 두고 있다. 남편과는 18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가다 사별했다. 이후 28년 동안 남자친구와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해오고 있다. 현재 남자친구는 오타와 집에 있다.
글로리아는 “여행을 좋아해 쿠바도 네 번 다녀왔고, 도미니카 등 여러 곳을 다녔다. 작년에는 아들 부부, 손녀와 함께 크로아티아도 방문했다”며 “도미니카의 리조트는 규모가 작고, 음식도 맞지 않았다. 쿠바는 가난한 사람이 많아 안타깝고 불쌍해 팁으로 돈을 많이 지불했다”고 말했다.
엠마.
엠마는 “첫 딸을 18세 생일날에 낳아 딸과 내 생일이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두 명의 딸과 손자 5명, 증손자 8명을 슬하에 뒀다. 이른 나이인 18세에 결혼 후 13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홀로 지내고 있다.
엠마는 “3년 전 칸쿤을 다녀 간 글로리아가 추천해 함께 오게 됐다”며 “리조트 규모가 크고, 시설도 만족한다. 특히 여러 식당에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선택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말했다.
겨울철 눈이 많이 내리는 오타와에서 살고 있는 엠마는 5년 전인 77세 때까지 스키를 즐겼다고 한다. 현재는 하이킹을 자주 하면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리조트 객실에서 산책로를 걷는 나를 불렀던 글로리아와 엠마.
하루는 낮에 산책로를 걷고 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다. 더워서 신경 쓰지 않고 걷는데, 계속 소리가 들려 자세히 들어보니 리조트 객실 베란다에서 “쩡”하고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내 이름을 잘 못 외울 거 같아 ‘정’이라고 가르쳐줬더니, 글로리아와 엠마가 목청껏 나를 불렀던 것. 뒤늦게 확인하고, 손을 흔들어줬더니 두 분 모두 활짝 웃었다.
좌측부터 글로리아와 엠마.
걸음도 걷기 힘들어 보이는 두 분을 처음 만났을 때 케어해주는 일행과 함께 오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리조트에만 머무실 줄 알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함께 대화하고, 술 마시고 춤추면서 에너지가 차고 넘치는 분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년을 잘 관리하면서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 전직 동료와 함께 여행을 이어가는 두 분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