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저널=서울】이번 산동성 여행에서 느낀 점은 중국이 역사동북공정을 끝내고, 이제 문화공정을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니산 공자상.
그 첫 번째가 공자에 대한 위상이다. 중화권에서도 공자는 오랜 기간 성인으로 취급받았다. 청(淸)나라 말기 서방 세력의 침입을 받고, 근대의 서양식 사고(思考)관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유교는 청이 뒤처지게 된 원흉으로 몰렸다. 연장선상에서 지식인층으로부터 공자도 격하게 공격을 받았고, 이때부터 전근대성의 상징처럼 인식하기 시작했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모택동(毛澤東, 마오쩌둥)은 공산주의 국가를 건설한 뒤에 조상 숭배를 금지했고,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 시절에는 공자를 깎아내리는 비림비공운동이 전개됐다. 이러한 맥락에서 문화대혁명 와중에 곡부(曲阜)의 상당수 공자 관련 유적·문화재가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파손되는 수모를 겪었다.
상처난 공자묘 비석.
비림비공운동(批林批孔運動)은 반모(反毛) 쿠데타의 주동자 임표(林彪, 린퍄오)를 공자에다 비겨 함께 비판한 10전 대회 이후의 정치운동이다. 공자 비판운동은 1919년 5·4운동 때부터 비롯됐다. 1960년대에 사학계에서 다시 일어났다가 1970년대에 와서는 유소기(劉少奇, 류샤오치), 임표(林彪)의 반당(反黨) 수정주의 비판운동으로 확산됐다.
니산 금성옥진 광장.
중국에서는 1973년 여름부터 약 3년간, 대규모의 공자비판 움직임이 활발했다. 공자의 호칭도 선생을 의미하는 ‘자(子)’를 빼고 ‘공구(孔丘)’라고 부르고, 또한 ‘공로이(孔老二, 공가의 차남)’라는 명칭이 붙여졌다. 공자를 숭배했다고 하는 임표 또한 ‘반혁명의 이데올로기’라고 비판받아서 정치적으로 말살됐다. 그렇지만, 이 비림비공운동은 학술적 실체가 없는 ‘영사사학(影射史學)’으로 전부 부정됐다.
공묘 앞에서 개인이 제사드리는 모습.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나고 나서 이에 대한 자성론이 확산되자 공자의 위상도 다시 회복되기 시작한다. 곡부의 유적과 문화재도 복원작업에 들어갔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면서 근대 공산주의 이전에도 중국엔 위대한 사상가들이 있었다는 식으로 공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자의 후손을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대만(타이완)에 거주하는 77대손이며 마지막 연성공(32대)인 공덕성(孔德成)이 문화혁명에 격분했다.
니산 공자상과 대학당.
중국당국은 공자(孔子)와 유가(儒家), 관련된 사업을 대대적으로 확산하는데 진력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자의 탄생지인 니산(尼山)에 니산성원서원(尼山聖源書院)을 신설해 국내외 학자들에게 대대적인 유가학풍을 일으키고, 니산성경공원(尼山聖境公園)을 조성해 중국의 내국인은 물론 외국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은 적극적인 문화공정이다.
니산성원서원.
두 번째가 덕주(德州, 더저우)시에는 동중서(董仲舒)를 기리기 위한 시설들이 새로 단장하고 있었다. 그는 음양오행의 이론을 유교에 채용해 세상 만물은 모두 이 규칙에 따르고, 이것이 사회적 질서도 규율한다며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주장하면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을 피력한다. 이는 ‘천지인(天地人)은 하나’라는 우리의 천부경(天符經)에서 도입한 것 같다.
천부경.
아무튼 중국은 올 때마다 무언가 달라지는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도로를 포함한 사회간접자본의 인프라가 날로 발전하는 것 같다. 명승 유적지에 가보면 몰려드는 인파가 홍수를 이룬다.
그러나 역사동북공정으로 남의 역사를 침탈하고 시진핑이 미국대통령 트럼프를 만났을 때 “역사적으로 보면 한국은 원래 중국의 일부였다”는 헛소리를 할 때, 이 나라는 그저 조용했고, 국내에서만 큰소리치는 강단사학계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북한까지 점령한 한(漢)나라의 왜곡된 지도.
우리의 이웃 국가인 중국이 발전하고 뻗어나가는 것에 대해 ‘배가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진정한 문화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진실 된 역사적 바탕 위에서 힘의 논리로 접근하지 말고 사실(史實)을 사실(事實)대로 기록해 역사침탈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子曰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자왈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라고 설파한 지혜(智慧)에 대해 중국이 먼저 알아야 한다.
논어(論語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글.
이는 “공자께서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지혜이니라”라고 설명한다. 우리가 쥐꼬리만 한 자존심 때문에 모르는 것도 아는 척하는 것이 큰 병폐가 아닌가? 이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르는 것을 스스로 안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한 것 같다.
동중서 동상 앞의 태극문양.
우리도 국기(國旗)인 태극기의 정체성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음양을 나타내는 태극(太極)과 팔괘(八卦)가 중국의 가는 곳마다 도배돼 있다.
우리의 태극기는 중국의 것을 차용해 사용하는 것인가? 아니면 원래 고유의 우리 것인데 영토가 좁아져서 그렇게 된 것인가? 또는 우리의 고대사가 완전 부정된 식민사관의 후유증인가? ‘국가는 형체(形體)이고, 역사는 혼(魂)’이라는 사실을 다시한 번 가슴에 되새기자.
‘중국 산동성’에서 연재를 마무리합니다. 다음은 ‘중국 하남성에서’가 이어집니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