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숭양서원, 중국 고대 4대 서원 꼽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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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숭양서원, 중국 고대 4대 서원 꼽혀 중국 하남성에서(6)   편집국 2026-07-18 08:00:01

【에코저널=서울】숭산에서 내려온 발길은 바쁘게 숭양서원으로 향한다. 

 

숭양서원.

숭산의 남쪽 산기슭에 위치한 숭양서원(嵩陽書院)은 중국 고대 4대 서원의 하나로 꼽힌다. 북위(北魏) 시대인 484년 ‘숭양사(嵩陽寺)’로 창건됐으며, 수나라와 당나라 때는 ‘숭양관(嵩陽觀)’이라고 불렸다. 오대(五代)의 후주(後周) 때는 ‘태을서원(太乙書院)’으로 개칭됐다. 북송(北宋) 초기에는 ‘태실서원(太室書院)’이라고 불리다가 인종(仁宗) 때인 1035년 현재의 명칭으로 다시 바뀌었다. 

 

숭양서원 입구 패방.

1천년 전 송나라 시대에 창건한 유교서원으로 사마광(司馬光)이 중국의 고전, 자치통감을 저술했다. 송나라의 평화로운 시절에 유학생들은 이미 5대에 걸친 난세를 겪은 까닭에 숭산서원이 있는 곳처럼 조용한 산속에 모여 공부하기를 원했다고 한다. 서원의 입구인 패방(牌坊)의 중앙 문루에는 ‘高山仰止(고산앙지)’라고 쓰여 있다. 이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글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다. 

 

중악숭양사비.

숭양서원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는 중악숭양사비가 서 있다. ‘중악숭양사비(中岳嵩陽寺碑)’는 535년에 세워진 것으로 전해진다. 글자가 들어갈 칸마다 불상들이 가지런히 새겨져 있다. 혹시 이곳이 옛 절터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들지만 서원입구에 부처의 비석이 있다니 조금 아이러니하다. 우리나라 서원 같았으면 어림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답답한 것은 이 비에 대한 설명문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당비.

서원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당비다. 대당비(大唐碑)는 높이 9.02m, 넓이 2.04m, 두께 1.05m로,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돌로 만든 비석 중 가장 큰 이비는 ‘대당숭양관기성덕성응이송비(大唐嵩陽觀記聖德盛應以頌碑)’로서 당나라 744년(천보3년)에 세워졌다. 숭양서원의 도사 손태충(孫太冲)이 당현종의 병을 치료하는 이야기가 1078자의 글씨로 비면을 꽉 채운다. 금석문(金石文)의 역사·예술적 가치가 클 것 같다. 

 

제일장군 측백.

숭양서원 정원 안에는 오래된 측백나무 3그루가 있었는데, BC110년 한나라 무제(武帝)가 숭산을 왔을 때 첫 번째 문을 들어서자마자 이 측백나무를 보며 “내가 천하를 두루 댕겨봤지만 이렇게 큰 나무를 본 적이 없도다. 짐은 이 나무를 제1장군이라 칭하노라”고 말하고는 두 번째 문을 들어서니, 첫 번째 측백나무보다 훨씬 큰 나무(수령 4500년)를 만나게 되자 “이 나무는 제2장군이도다”라고 말했다.

 

제이장군나무 측백.

한무제가 다시 걸어 3번째 문을 들어섰을 때 눈앞에는 두 번 째 본 나무보다 더 큰 측백나무가 서 있었다. 한무제는 “크고 작은 게 뭐가 그리 대수냐! 먼저 들어온 것이 왕이다”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한무제가 숭양서원을 다녀간 뒤 첫 번째 나무는 미안한 모습으로 허리를 굽힌 모습을 하고 있고, 두 번째 나무는 화가 나 나무속이 터졌고, 마지막 나무는 너무 화가 난 나머지 화병으로 죽어버려 지금은 흔적도 없다고 한다.

 

선성전에 모신 공자.

이 측백나무를 지나면 선성전을 만난다. 선성전(先聖殿)은 이미 성인 반열에 오른 공자의 상을 모신 전각이다. 공자(孔子, BC551∼BC479)는 유교의 시조(始祖)인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정치가·사상가·교육자다. 노나라의 문신이자, 작가이기도 하다. 흔히 유교(儒敎)의 시조로 알려져 있으나, 일반적인 종교들과 유사 취급될 수 없다. 유가 사상과 법가 사상의 공동 선조로 인식되고 있다. 

 

납매.

선성전을 나올 때는 이미 해는 서산에 기울었다. 길옆에는 음력 12월에 핀다는 납매(臘梅)가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며 은은한 향기로 갈 길이 바쁜 발목을 잡는다. 납매의 ‘납(臘)’은 음력 12월을 달리 부르는 말이다. 납매를 ‘당매(唐梅)’라고도 하며, 줄기는 뭉쳐나며 높이는 2∼4m이다. 꽃 지름은 2cm 내외로 꽃받침과 꽃잎은 다수다. 가운데 잎은 노란색으로 대형이고, 속잎은 암자색으로 소형이다.

 

요임금.

우임금.

주공.

선성전 위에 있는 도통사(道通祠)에는 요임금을 중앙으로 우측에는 우임금이, 좌측에는 주공이 나란히 있다. 요(堯) 임금은 검소하고 근면한 인물로, 천자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쓰러져가는 움막에서 살았다. 음식은 백성과 같이 거친 쌀과 푸성귀만 먹었고, 여름에는 누더기 같은 옷을, 겨울에는 녹피(鹿皮) 한 장을 입고 지냈다. 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정을 베푸는 군주의 모습으로 그의 덕치(德治)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이라는 고사성어가 나왔다. 

 

우(禹)임금은 중국 전설상의 하(夏) 왕조의 시조로 치수(治水)를 성공해 천하를 구주(九州)로 나눴다. 재위 십년 만에 죽자 아들 계(啓)가 이어받아 최초의 세습왕조인 하왕조가 시작된다. 주공(周公)은 주나라의 기틀을 세운 주공(周公) 단(旦)이다. 공자(孔子)는 논어를 통해 그의 꿈을 꾼지 오래됐다며 멘토로 삼았다. 요순(堯舜)임금을 비롯해 중국신화와 우리나라 고대사와 겹치는 부분이 많아 자세한 언급은 다음으로 미룬다. 

 

‘讀萬券書(독만권서) 行萬里路(행만리로)’.

숭산서원을 대충 둘러보고 어둠 속을 뚫고 나오는데 길가에 앉아 있는 동자상 뒤 돌기둥에는 ‘讀萬券書(독만권서) 行萬里路(행만리로)’라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는 명나라 서화가(書畵家) 동기창(董其昌, 1555~1636)이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를 걸어보아야 인생을 안다’는 뜻을 내 나름대로 ‘行路萬里(행로만리) 讀書萬券(독서만권)’으로 변형해 ‘만 리를 걸으면 만 권의 책을 읽는 것과 같다’로 자주 사용하는 문구다. 발걸음은 한 권의 책을 더 읽기 위해 낙양(洛陽)으로 향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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