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산에 빼곡한 구멍 ‘용문석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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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산에 빼곡한 구멍 ‘용문석굴’ 중국 하남성에서(10)   편집국 2026-08-01 08:00:01

【에코저널=서울】관림에서 오전을 마감하고, 오후에는 중국 하남성 낙양의 남쪽으로 14km 정도에 위치한 용문석굴로 이동한다. 

 

용문석굴 표지석.

낙양용문석굴(洛陽龍門石窟)은 돈황막고굴(敦煌莫高窟), 북경의 대동운강석굴(大同雲岡石窟)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이고, 모두 세계문화유산이다. 

 

용문박물관(석굴) 입구.

중국의 석굴은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 시대 선비족이 세운 위(魏)나라가 약 150년을 통치하면서 도읍이 대동(大同, 다퉁) 시절에 운강석굴을, 효문제(孝文帝)가 494년에 낙양으로 천도한 후에는 용문석굴을 각각 만들었다. 돈황의 막고굴은 366년 처음 만든 굴이다.

 

용문.

용문석굴 입구를 지나면 남쪽에서 발원해 낙양을 지나 황하로 들어가는 이하(伊河)가 흐른다. 석굴은 강을 사이에 두고 오른쪽인 서쪽과 왼쪽인 동쪽에 있다. 북위(北魏)가 조성한 석굴은 당나라 시대까지 계속 확장했다. 서산(西山)에는 가장 오래된 고양동(古陽洞)을 비롯해 선무제(宣武帝)가 발원한 빈양동(賓陽洞)과 연화동(蓮華洞), 위자동(魏字洞) 등 북위의 석굴이 많다. 석굴이 모두 2345개며, 작은 불상까지 합하면 10만개 정도다. 

 

용문석굴 잠계사 불상.

입구를 지나면 당고종(唐高宗) 시대에 만들어진 잠계사(潛溪寺)와 바로 만난다. 잠계(潛溪)는 ‘계곡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조성할 때 지하로 계곡물이 흘렀으며, 높이와 너비가 9m, 깊이는 7m에 이른다. 

 

용문석굴 서산.

주불인 7.38m의 아미타불이 있고, 옆으로는 제자인 가섭·아난과 함께 왼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우측으로는 관세음보살이 보좌한다. 이곳의 불상들은 당나라 석각 예술의 상징으로 유명하다. 

 

빈양동 중동 안의 불상.

바로 옆에는 3개의 석굴로 이뤄진 빈양동(賓陽洞)이 있다. 1층에 3개의 석굴이 나란히 있고 4층까지 불감(佛龕)이 많다. 중동을 기준으로 왼쪽이 남동, 오른쪽이 북동이다. 북위가 만든 중동은 영암사(靈巖寺)라 불렸다. 

 

위서(魏書)에 의하면 선무제가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영암사에 고조(高祖)와 문소황후(文昭皇后)를 위해 석굴을 조성하라’는 조서를 내렸다. 친모인 문소황후 고조용은 고구려에서 출생했다. 귀인 신분으로 낙양 천도 과정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아들이 황제가 된 후 황후로 추존됐다. 

 

만불동 내부.

만불동(萬佛洞) 벽면에는 두 개의 방으로 나눠 손가락 하나 크기의 불감(佛龕) 속에 무려 1만5천 여개에 이르는 부처를 아주 작게 새겨 놓았다. 전실(前室)에 역사(力士)와 사자가 지키고 있고, 후실에 연화좌에 앉은 아미타불과 제자·보살·천왕이 자리 잡았다. 천정에는 연꽃 주변 테두리에 ‘일만오천존불감 대당영륭원년(一萬五千尊佛龕 大唐永隆元年)’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680년(당 고종)에 축성됐다는 얘기다. 

 용문석굴 연화동.

봉선사 노사나대불.

연꽃이 조각된 연화동(蓮花洞)에는 석가모니입상 위에는 지름이 3m가 넘는 연꽃이 마치 우산처럼 받치고 있다. 연꽃 한가운데는 연밥이 열린 것처럼 구멍을 뚫어 표현해 놓았으며, 테두리는 인동초를 둘러놓았다. 인동초(忍冬草)는 처음에 하얀 꽃으로 피어 수분(受粉)이 되면 노란색으로 변해 일명 ‘금은화(金銀花)’라고도 한다. 남북조 시대부터 유행한 문양이라고는 하나, 불교문화에서 인동초 문양을 본다는 것은 예상 밖이다. 

 

용문석굴이 있는 용문산(서산)과 이하.

좌측으로 이동하면 용문석굴을 대표하는 너비 30m의 대형 석굴 봉선사가 나온다. 측천무후가 만든 봉선사(奉先寺)는 거대한 불상인 노사나대불이 자리 잡고 있다. 머리가 4m, 귀가 1.9m이고 전체 높이가 17.14m다. 노사나불(盧舍那佛)은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지닌 부처로 삼신불 중 보신불(報身佛)로 측천무후 얼굴을 닮았다고 한다. 

 

용문석굴 고양동.

산 전체에 빈틈없이 구멍을 뚫었고, 나무 계단을 만들어 연결하고 있어서 오르내리며, 곳곳에 숨은 석굴을 관람한다. 큰 석굴은 지면과 가깝고 위로 올라갈수록 작다. 군데군데 자그마한 석굴에 숨은 불상들은 각양각색이며, 부드러운 바위에 자유롭게 불심을 새겼다. 이름 없는 불상이라 해도 부처와 제자·보살이 구색에 맞춰 마련돼 있었다. 


계단 따라 올랐다 다시 내려오면 고양동(古陽洞)이 나온다. 마주 바라보면 봉선사 왼쪽에 위치한다. 효문제(孝文帝)가 할머니인 빙태후의 공덕을 기렸다. 높이와 깊이가 11m, 너비가 7m다. 용문십구품(龍門十九品)이라 부르는 비문이 잔뜩 새겨져 있다. 19개 작품 모두 조상기(造像記), 즉 불상 조성에 대한 기록물이다. 당시 왕족들이 앞다퉈 비문을 새겼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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