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곰탕 먹고 죽음 면한 ‘주문왕’

메뉴 검색
<와야(瓦也) 연재>곰탕 먹고 죽음 면한 ‘주문왕’ 중국 하남성에서(13)   편집국 2026-08-09 08:00:01

【에코저널=서울】주나라로 돌아온 희창은 상나라를 토벌할 준비를 했다. 우와 예의 분쟁을 중재했다. 견융(犬戎)·밀수(密須)·여(黎)·기(耆)·한(邯)·숭(崇)을 정벌했고, 풍읍(豊邑)에 도읍을 정했다. 

 

주문왕이 감옥에 있을 때 모습.

천하의 3분의 2를 장악하고, 상나라의 수도 조가(朝歌)로 진격할 준비를 하다가 96세에 사망했다. 사후 희창의 뒤를 이어 차남 희발이 주나라의 군주인 무왕에 오른 후 아버지 희창은 문왕(文王)으로 추숭됐다. 

 

완점정(玩占亭).

세심정(洗心亭).

유리성 유적지는 바닥에서 3m 정도 튀어나온 하나의 커다란 토대(土臺)로 면적은 1만㎡에 달한다. 주문왕 동상 뒤에 ‘연역방(演易坊)’이라고 쓰인 패방을 통과하면 ‘주문왕연역처(周文王演易處)’ 전각이다. ‘역을 풀이할 수 있는 장소’라는 뜻 같다. 쭉 이어서 완점정(玩占亭)과 세심정(洗心亭)이 나란히 있다. ‘세심정에서 마음을 닦고 정한 마음으로 완점정에서 점괘를 보라’는 의미 같다. 

 

문왕역비정(文王易碑亭).

유리성에는 문왕묘(文王廟), 대전(大殿), 어비정(禦碑亭), 복희사(伏羲祠), 노자사(老子祠) 등 전각과 유적지구, 10여 개의 비석 등이 있다. 이는 주역(周易)·은상(殷商)의 역사, 전통 서예 등 연구에 큰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문왕상(文王像)을 모신 대전 옆의 문왕역비정(文王易碑亭) 안에는 문왕역(文王易)이 새겨진 비석이 있다. 

 

문왕역비(文王易碑).

연역대 입구 좌측에는 선천팔괘도의 비가 있고, 우측으로는 후천팔괘도의 비가 있다. 안의 중앙에는 주문왕이 이곳에 갇혔을 때 모습으로 앉아 있고, 천정에도 태극문양을 중심으로 팔괘가 그려져 있다. 

 

유리정(羑里井).

연역대 옆으로는 주문왕이 갇혔을 때 이용한 ‘유리정(羑里井)’이란 우물이 있다. 이 우물은 시원하고 상쾌하고 달콤한 샘이 솟았다. 유리성이 황폐화될 때 물이 말랐다가 유리성의 복원과 함께 신기하게 물이 솟았다고 한다. 

 

후천팔괘도비.

문왕역(文王易)은 ‘낙서(洛書)’와 ‘후천문왕팔괘도(後天文王八卦圖)’를 바탕으로 하는 문왕(文王)의 역학체계다. 낙서는 중국 고대 하(夏)나라의 우(禹) 임금이 낙수(洛水)에서 얻은 글로서, 이를 바탕으로 ‘홍범구주(洪範九疇)’라는 천하 통치의 대법을 만들었다. 이후 후대를 거치며, 낙서를 바탕으로 ‘후천문왕팔괘도(後天文王八卦圖)’의 원형이 성립됐다. 

 

선천팔괘도비.

‘복희팔괘’라고도 불리는 복희씨의 선천팔괘도는 만물의 생성원리를 팔괘로 설명한다. 이에 관한 근거는 주역에 “천지가 자리를 정함에 산과 못이 기운을 통하며 우레와 바람이 서로 부딪치며 물과 불이 서로 쏘지 아니하여 팔괘가 서로 섞이니 가는 것을 수놓음은 순하고 오는 것을 아는 것은 거스르는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역(易)은 역수(逆數)다”라고 나온다. 

 

팔괘미로.

팔괘정.

유리성 후원에는 팔괘정이 있고, 그 주변으로 팔괘를 이용해 미로게임장을 만들어 놓았다. 팔괘(八卦)는 건(乾☰)·태(兌☱)·이(離☲)·진(震☳)·손(巽☴)·감(坎☵)·간(艮☶)·곤(坤☷)을 말한다. 괘(卦)는 천지만물의 형상을 걸어 놓아 사람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그 구성은 음효(陰爻)와 양효(陽爻)를 1대 2, 또는 2대 1 등의 비율로 셋이 되게 짝지어 이뤄진다. 게임장에 들어가서 한참을 미로를 걷다 보면 팔괘정을 향한 출구를 찾아 나온다. 

 

태공사.

유리성 안에는 태공사(太公祠)도 있다. 태공(太公)은 주문왕의 스승 여상(呂尙)의 호인 태공망이다. 태공망(太公望)이란 문왕의 조부 고공단부(古公亶父)가 “장차 성인이 우리나라에 오게 되면 그의 힘으로 나라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예언에 따라 태공(조부라는 뜻)이 바라고, 기다린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호칭이다.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천하를 평정했으며, 강태공(姜太公)이라고도 한다. 

 

백읍고(伯邑考, 희고)의 묘.

넓은 권역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목에 주문왕의 큰아들 희고(姬考)의 묘가 있다. 그는 읍(邑)의 관직에 봉해져 읍고(邑考)라 불렀다. 읍고는 주문왕의 장남이라는 뜻으로 앞에 ‘백(伯)’이 붙었다. 주왕(紂王)이 주문왕을 감금하자, 희고는 부친을 구하기 위해 칠향거(七香車) 등 보물을 주왕에게 바쳤으나, 애첩 달기(妲己)의 모함으로 사지를 잘라 죽여 그의 골육(骨肉)으로 곰탕을 만들어 부친 희창에게 보내어 먹게 한다. 

 

자강불식.(自彊不息,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부단히 가다듬어라) 

주문왕은 괘상(卦象)을 보고 자식이 화를 당했다는 것을 알았고, 다음 날 아침에 곰탕이 올라왔지만, 그는 전혀 모르는 척하고 먹어 주왕을 속인다. 그리하여, 주왕은 희창이 복괘(卜卦)로 미래를 본다는 것이 헛소문이라고 여겨 풀어준다. 

 

고향으로 돌아온 희창은 막 서주의 땅을 밟았을 때, 속이 메스꺼워 입을 열었더니 토끼 3마리가 나왔다. 그는 이것이 희고의 삼혼(三魂)이 화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추천해요
0
좋아요
0
감동이에요
0
관련기사

오피니언

주소를 선택 후 복사하여 사용하세요.

뒤로가기 새로고침 홈으로가기 링크복사 앞으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