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야(瓦也) 연재>한 마을 두 개의 도(道), ‘고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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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야(瓦也) 연재>한 마을 두 개의 도(道), ‘고포마을’ 태양, 파도와 함께 걷는 ‘해파랑길’(23)  
  • 기사등록 2024-04-28 06:26:54
  • 기사수정 2024-04-29 21:5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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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저널=서울】어제 하트해변을 따라 계속 나가려고 시도했으나, 날카로운 자갈과 바위들이 길을 막아 뒤로 돌아 나온 죽변시내 죽변면도서관 앞에서 다시 오늘을 시작한다. 

 

죽변면도서관 입구.

동해바다.

수세미꽃.

동해의 아침은 볼 때마다 싱그럽다.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 끝에는 물비늘이 유난히 반짝인다. 길가의 수세미도 넝쿨을 타고 올라온 노란 꽃은 하늘을 향해 활짝 웃는다. 

 

후정해변과 원자력발전소.

죽변면의 후정해변으로 나가보니 백사장 끝에 있는 원자력발전소가 보인다. 해파랑길은 국가주요시설이 있는 곳은 보안상의 이유로 피해가게 되어 있나 보다.

 

해안 이면도로를 따라 울진군 북면 부구리로 이동한다. 옛날에는 부구리(富邱里)를 마을에 거북모양의 신령스런 바위가 있어 영구리(靈龜里)라고 했으나, 1914년 일제가 토지측량을 할 때 일본인 기사가 ‘영구’의 한자표기가 어려워 부구천(富邱川) 건너 염전리의 ‘염(鹽)’자와 쓰기 어려운 구(龜)자 대신 ‘구(邱)’로 바꾸어 염구리(鹽邱里)가 됐다. 그 후 행정구역 개편 때 흥부동(興富洞)의 부(富)자와 염구동의 구(邱)자를 따서 부구리(富邱里)가 됐다고 한다.

 

부구천 하구.

울진군 북면 응봉산 부근에서 발원해 동류하면서 덕구리, 주인리, 부구리를 지나 동해로 유입되는 부구천을 따라 석호항을 지나 나곡해안으로 나간다. 

 

부구리 해안.

석호항은 나곡리에 있는 어촌정주어항으로 남쪽으로 울진원자력발전소가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부구리를 비롯한 이쪽지역은 토염(土鹽)과 돌미역, 건어물, 생선, 젓갈 등 해산물을 봉화와 안동 등 영남 내륙으로 유통시키던 ‘십이령보부상길’의 유통로다.

 

‘고포마을’.

이른 점심을 먹고, ‘고포미역’으로 유명한 고포항으로 이동한다. 고포미역마을은 가운데 복개도로를 중심으로 남쪽은 경상북도 ‘울진군 고포’로,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고포’로 나누어져 있다. 40여 호도 안 되는 마을에 이장(里長)도 두 명이 있어야 하는 등 행정상으로는 불편한 것이 더 많을 것 같다. 

 

울진고포미역과 삼척고포미역.

고포미역은 다른 지역보다 품질이 우수해 고려시대부터 임금님께 진상하는 최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돼 있는 고포미역은 현재까지도 전국적인 명성을 자랑하는 대표적 특산물이다. 

 

이곳은 1968년 11월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침투한 ‘울진삼척지구무장공비침투사건’의 중심지다. 무장공비들은 15명씩 8개 조로 편성돼 10월 30일, 11월 1일, 11월 2일의 3일간 야음을 틈타 고포해안에 상륙, 울진·삼척·봉화·강릉·정선 등으로 침투했다. 삼척군 하장면의 한 산간마을에서는 80세노인, 52세의 며느리, 15세의 손자 등 일가 세 사람이 난자당했으며, 평창군 산간마을에서는 10세의 이승복(李承福) 어린이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절규와 함께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

 

울진고포의 군시설보호지역.

처참했던 고포미역마을의 과거는 세월 속에 묻히고 도계(道界)를 넘어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로 진입한다. 우리의 산야 어느 곳이든 지천으로 자생하는 칡이 고포마을 언덕에도 무리를 지어 꽃을 피운다. 

 

칡꽃.

칡은 오래전부터 구황작물로 식용됐고, 자양강장제 등 건강식품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갈등(葛藤)의 주인공인 칡과 등나무는 다른 나무들을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데, 칡은 오른쪽으로 감고 올라가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고 올라가기 때문에 이들 두 식물이 얽히고설킨 모습에서 ‘갈등’이란 말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해안을 따라 계속가면 원덕읍 월천리 해변이 나오고 그 위에는 가곡천(柯谷川) 하구와 마주친다. 가곡천은 울진·삼척지역의 궁궐용 소나무(경복궁 삼척목)인 황장목(黃腸木)을 바다까지 운반할 때 중요한 수로였다고 한다. 

 

가곡천 하구.

가곡천 하구 북쪽에는 LNG생산기지가 자리한다. 월천교를 따라 가곡천을 건너면 원덕읍 호산리의 호산천(湖山川)을 건너간다. 

 

머루.

엄나무 꽃.

호산천 주변에는 머루가 송이송이 영글어 가고, 개두릅으로도 불리는 엄나무도 꽃을 피워 가을을 재촉한다.

 

호산천 징검다리.

호산천을 징검다리로 건너 안으로 들어가면 해망산이 나온다. 해망산은 일명 부용산이라고도 하는데 해변에 우뚝 솟은 산이다. 

 

해망산 안내.

남서쪽에 부용(또는 부신당)이라는 호수가 있었다 하며, 고려 때 부용이라는 선녀가 와서 놀던 곳이라 한다. 조선 태조2년(1394) 당시 기록에 이 산의 이름이 알려졌는데 ‘옥원 동쪽에 부신당이 있고, 연못 앞에는 해망산, 남쪽에는 죽현이 있다'고 했다. 

 

시멘트 컨베어벨트시스템.

계단을 타고 정상에 올라서면 주변의 경관들이 환하게 보인다. 물론 동쪽으로는 바다가 훤하고, 남쪽으로는 LNG생산기지 탱크들이 지척이며, 북쪽으로는 호산항과 시멘트 하역을 위한 컨베어벨트 시설이 길게 늘어서 있고, 멀리 ‘삼척일반공업단지조성공사장’까지 보인다. 

 

해망산 성황당.

성황당 금줄.

정상부근에 성황당(城隍堂)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는 서낭제를 지내는 곳 같다. 서낭제의 연속인지 성황당 아래에는 새끼에 백지를 꽂아 금줄을 쳐 놓았다.

 

원덕119 안전센터.

해망산에서 내려와 호산항 쪽으로 길을 잡아 나가는데 시멘트공장 앞에서 길이 막혀 원덕읍 시가지를 가로질러 ‘원덕119 안전센터’까지 돌아 나와 공터에서 휴식을 취한다. 

 

향나무.

조.

어느 집 울안에는 손질하지 않은 향나무의 모습이 ‘백제금동향로’를 연상시킨다. 주변의 밭에서는 조(粟) 이삭이 나와 막 고개를 숙인다.

 

옥원1리 표지석.

옥원1리(沃原一里) 마을 표지석 뒤로는 관동대로의 능선들이 아득하게 보이고, 삼척로를 따라 옥원삼거리∼수릉삼거리∼노곡교차로∼작진삼거리를 지나 노곡항 입구인 노곡삼거리에서 일정을 마무리한다. 

 

노곡항 입구.

길을 걷다보면 가끔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변수가 생기더라도 나그네에게는 아주 지극한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투덜대지 말고 즐길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진리를 이번 여정에서 다시 터득한 행로였다.

 

◆글-와야(瓦也) 정유순

현 양평문인협회 회원

현 에코저널 자문위원

전 전주지방환경청장

전 환경부 한강환경감시대장

홍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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